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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be with you"
- Korean Catholic Church of Hawaii -
       
 
성지순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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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한인성당
"Peace be with you"
- Korean Catholic Church of Hawaii -
작성자 푸른산
작성일 2015-07-19 (일) 16:03
분 류 성지순례이야기
ㆍ조회: 1649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10946.30
“ 머슴과 공주의 동유럽 성지순례 - 해골성당과 야스나고라 ”

프라하 중앙역

렌터카

주일 아침이 밝았다. 주일 미사는 폴란드 쳉스트호바에 있는 야스나구라 수도원에서 검은 성모님과 함께 드리기로 했다. 프라하에서 무려 500km이상 떨어져 있는 곳이고 오늘부터는 렌터카를 이용해서 움직일 계획이라 아침부터 서둘러 프라하 중앙역으로 향한다.

여기서 잠깐, 유럽여행시 유레일패스? 버스? 저가항공? 렌터카? 어느 것이 좋을까? 정답은 내 맘에 드는 걸로~ ㅋㅋ

한때 유럽여행~ 하면 유레일패스가 진리이던 시절이 있었다.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가 기차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있어 유레일패스를 사서 기차여행을 하는 것이 아주 편리한 방법이다. 특히 혼자하는 여행, 그것도 유럽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여행이라면 더 이상 좋을 수 없지만, 요즘 유레일패스 가격이 만만치 않게 오른데다 패스를 가지고 있어도 좌석예약비, 침대사용료 등등 별도로 지불해야 하는 부가요금이 늘어나 차츰 배낭여행객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아직도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대신 ‘나 여행쫌 했어~’하는 배낭여행자들은 꼭 필요한 구간만 기차를 이용하고 버스와 저가항공편을 함께 엮어서 이용하는 것이 요즘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 쇼핑만 잘하면 자기가 필요한 구간의 저렴한 기차표나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짠돌이 여행을 즐기는(즐긴다는 표현으로 풍족하게 다니지 못함을 위로한다. ㅋㅋ) 머슴도 2009년 성지순례 이후로는 유레일패스에 상당히 회의적이다. 특히 일반 여행이 아니고 성지순례를 표방(?)하는 우리들에겐 그다지 끌리지 않는 옵션이다. 물론 주요 성지.성당들이 대도시에 있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루르드처럼 유명한 성지는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대중교통 서비스가 잘 되기도 하지만, 이태리 수비아꼬의 베네딕토 성인, 스페인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 프랑스 아르스의 비안네 성인 성지처럼 꼭 가고 싶은 곳을 골라 순례를 가려 하다 보면 대도시 주요 역에서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닌데 걸어가자니 하루 종일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면 몇 번을 갈아타야 해서 몇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고, 택시를 타자니 어마어마한 비용이 필요한 황당한 시츄에이션과 왕왕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머슴이 요즘 즐기는 옵션이 렌터카다. 혼자 가는 여행이라면 그다지 경제성이 없지만 둘 이상이면 심각하게 고려해볼 것을 추천하는 옵션이다. 세 명이나 네 명이라면 강추! 단, 스틱(매뉴얼 트랜스미션)차량 운전에 익숙한 것이 좋다. (유럽 렌터카는 10대 중의 1대 정도만이 오토차량이라서 예약도 힘들뿐더러 비용도 당연히 비싸다. 교대운전이 가능하다면 금상첨화!) 이번 여행의 경우 프라하 중앙역에서 소형 스틱차량을 18일간 빌리고 프라하 공항에서 반납하는 옵션으로 250유로에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괜찮츄~? ㅎㅎ) 유럽의 기름값이 미국에 비해서 많이 비싸지만(대략 한국과 비슷한 수준) 소형차량이라 연비가 월등해서 주행거리당으로 계산하면 더 저렴하게 다닐 수 있다. (빠리 등 몇몇 대도시를 제외한 유럽 중소도시 구도심의 길거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좁은 곳이 많다. 거기에 길거리 주차 시 불편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중형이나 고급차량은 권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가고 언제든지 좀 더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 수 있다는 점이 매력! 물론 장거리 이동 시에는 기차나 비행기에 비해 다소 매력이 떨어지니 체력안배나 일정계획을 꼼꼼이 잘 짜야 한다.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해보니 7시가 좀 넘었다. 그런데 렌터카 사무실이 없다! 뭐시여~ 시방? 넓디 넓은 중앙역을 한참을 헤매도 보이질 않는다. 문이 열린 상점 점원들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노 잉글리쉬~’ 어무이~~~~~
겨우 영어를 하는 사람을 찾아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갸우뚱! '헐~ 여기 맞는 겨?'

혹시 역사 밖에 있나? 하고 밖으로 나갔다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젊은 남자 종업원을 만나 물어보니 근근이 말귀는 알아들었는데 영어로 위치 설명을 못한다. 결국 직접 안내를 해준다며 나선다.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찾은 렌터카 대여소. '우~띠~ 뭐시여 시방?' 우리가 찾느라고 계속 서성대고 있던 바로 코 앞이다. 단지 살짝 돌아앉아 있는데다 아침 8시에 문을 여는 관계로 아직 불을 안 켜놓아서 못 봤을 뿐. 길 찾기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머슴이 보기 좋게 한방 먹었다. 역시 등잔 밑이 어두운 겨!

문이 열릴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앙증맞은 빨간 스코다 차량 한 대를 빌릴 수 있었다. 머슴의 생애 첫 차가 빨간색 프라이드였기 때문인지 미소가 씨익~나온다.
자 이제 출발!


쿠트나 호라 해골성당

프라하에서 폴란드 쳉스트호바까지는 먼 길이다. 경부고속도로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가 다시 대구까지 오는 정도? 한방에 직접가기는 다소 부담스러운 거리이고 또 가는 길에 들러보고 싶은 곳이 있어 쿠트나호라로 향한다.

잠시 쿠트나호라의 소개: 은의 도시로 유명한 쿠트나호라(Kutna Hora; 수도복의 산)는 프라하 동쪽 72키로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체코 왕실의 국고’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13세기 초 이곳에서 은광맥이 발견되면서 13세기 말에는 유럽 은의 3분의 1을 공급하는 등 200여년간 유럽 최대의 은광 도시로 자리하였다. 왕족과 귀족들은 은광 운영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곳에 왕실 조폐소가 설치되는 등, 당시에는 프라하를 능가할 만큼 막대한 세력을 키었던 도시였으며 16세기에 들어 은 생산량의 감소와 함께 30년 전쟁을 겪으며 차차 발전이 멈추게 되며 18세기 말에는 사실상 광산들이 폐광되었다. 1995년 쿠트나호라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당시의 영광을 보여주듯 이곳에는 체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후기 고딕 건축물인 광부들의 수호성인 성 바르바라 성당과 쿠트나호라 세들레츠 지역에 있는 해골성당이라 불리는 ‘코스트니체 세들레츠’, 세들레츠에서 가장 큰 바로크양식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등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있다.



광부들의 수호성인 성 바르나바 성당

그 중 머슴과 공주가 가고자 하는 곳은 해골성당! 성 바르바라 성당과 성모마리아 대성당을 잠시 들러보고 해골성당으로 향한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동네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묘지가 있는 약간은 특이한 모양의 성당? 좀 역사가 있는 성당들은 많은 경우가 그 마당이 묘지로 이루어져 있으니 뭐 그닥 신기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헐… 입구에 들어서니 사람 해골과 뼈로 만들어진 장식들이 반긴다. 음… 이 분위기는 뭔가유? 어렸을 적, 담력을 키운다고 가끔 한밤 중에 공동묘지에서 놀아본 경험이 있는 머슴이기에 그다지 무섭거나 으시시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예쁘다고 표현하기엔 장식품이 되어 걸려있는 그 분(?)께 죄스러운 느낌이고… 암튼 이럴 때 써먹을 수 있는 좋은 표현이 전라도 말에 있다. 그냥 좀 거시기하다. (알아서 해석하시라)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니 여긴 정말 ‘해골잔치(?)’다. 그 중, 골반뼈를 중심으로 만든 초 받침대와 그것을 무수한 해골들과 연결해서 만든 대형 샹들리에, 허벅지뼈와 종아리뼈 그리고 예쁜 해골(그냥 머슴의 느낌이다)을 산더미처럼 쌓아 만들어놓은 피라미드형 납골소, 손가락뼈에서 시작해서 해골에 이르기까지 인체의 갖가지 뼈를 총 망라해서 만들어놓은 슬라브 귀족가문의 문장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글이나 영상매체를 통해서 본 적도 있고 이곳의 역사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만약에 이것이 나의 유골이라면 어땠을까? 길거리나 수도원 주변에 나뒹굴던 유해를 모셔준 것엔 틀림없이 감사해야 할 일인데 장식품이 되어 매달려 있다면? 화를 내야할까? 아니면 자랑스러워해야 할까? 지하의 해골성당을 나와 위층에 자리잡고 있는 또 하나의 성당으로 올라가 이렇게 많은 유해를 거두어준 그분들과 또 이곳에 잠든 영혼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문을 나선다.

자. 이제는 쳉스트호바로 달려가야 할 시간. 가는 길에 올로모츠에 들러 삼위일체 석주도 보고싶지만 우린 아직 주일 미사를 드리지 못했다. 부지런히 달려가야 저녁이 되기 전에 검은 성모님과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으리라.

여기서 잠깐, 혹시 못 가본 분들을 위하여 사진과 함께 해골성당을 소개하고 가기로 하자. (이미 가 보신 분들은 점프해서 아래 야스나구라로 넘어가시길…)

세들레츠 해골성당

해골성당의 정식 이름은 코스트니체 세들레츠(Kostnice Sedlec)인데 995년 슬라브닉 가문의 일원이었던 미로슬라브가 이 지역에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시토회 수도원을 만들기 시작했고 1142년에 처음으로 12명의 수도사가 이 곳으로 왔다. 그 후 은광이 발견되면서 쿠트나호라가 차차 확장되고 근처에 성모마리아 성당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공동묘지와 납골당이 이곳에 들어선 것으로 추정한다.

11~13세기는 유럽인들이 이슬람교도들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 원정을 벌였던 때다. 종교를 매개로 유럽인들이 하나가 되었고 이스라엘 땅을 밟는 것이 가톨릭교도들의 소망이기도 했다. 1270년 마지막 8차 십자군 원정이 끝났고 짧은 시간이지만 평화가 찾아왔다. 1278년 보헤미아 왕 오타카르(Otakar) 2세에 의해 공식사절로 이스라엘로 파견됐던 수도원장 앙리(Henry)가 예루살렘의 성지들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골고다 언덕에서 흙 한줌을 가져와 세들레츠 수도원묘지에 뿌렸다. 이 소문은 보헤미아와 중부 유럽에 급속히 퍼져나갔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님이 부활한 곳의 흙이었으니 그 흙에 묻히면 다시 부활하리라는 생각에 많은 부유한 사람들이 이곳에 묻히기를 간절히 원했다. 1318년까지 3만이 넘는 인원이 이곳에 매장됐다고 한다. 14세기 들어 묘지 한가운데 고딕양식의 모든 성인들의 성당이 건립되었으며 14세기말 흑사병이 창궐하고 후스 전쟁까지 이어지면서 사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더 이상 시신을 묻을 곳이 없자 일반인들의 무덤에서 뼈를 빼내고 그곳에 귀족들을 묻는 일이 발생하면서 수도원 주변에는 서민들의 유골이 넘쳐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1511년, 반 맹인이었던 시토 수도회의 세들레츠키 수사는 매일 이 일대에 나뒹구는 유골을 지하성전에 모아들여 장식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그 후 16세기 말 은광의 고갈과 30년 전쟁의 여파로 쿠트나호라의 영광이 사그러지는 것과 함께 수도원은 잊혀져갔다. 1784년 황제 요셉2세가 수도원을 폐지하면서 소유권을 넘겨 받은 슈바르젠베르크 가문이 이곳에 저택을 지으려던 중에 지하에 있는 약 4만명의 유골을 발견하게 되고 일설에 따르면 그 안에서 이 유골들을 잘 돌봐달라는 수사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한다. 그 뜻을 이은 슈바르젠베르크 가문에 의해 채용된 체코 스칼리체 출신의 유명한 나무조각가 프란티섹 린트(František Rint)에 의해 1870년 해골성당이 완성되었다. 뼈는 모두 소독한 후에 회칠해서 사용했고 쓰고 남은 조각은 다시 매장했다고 하는데 제대위 십자고상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성당 장식을 이루고 있는 뼈의 개수만도 4만여개라고.


해골성당 입구

입구 정면 상단에는 해골과 뼈로 만들어진 십자가가 장식되어있고 계단입구 좌우에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라는 뜻인 IHS라는 글자를 장식되어있고 아래로 계단 양쪽에 해골로 만들어진 두개의 성작이 마주보고 있다. 계단을 내려가면 오른쪽에 ‘체코 조각가 프란티쉑 린트-1870’라고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으로 해골과 다리뼈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 올린 납골소를 몇 개 볼 수 있다. 이 뼈는 서로 묶지 않고 쌓아서 만들었다 하는데 죽음은 인간에게 공평하며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성당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십자고상 앞, 성당 정 중앙에는 해골로 장식된 아기천사의 탑과 그 위에 여러 개의 골반뼈와 해골로 만든 초받침을 여러가지 뼈로 엮어 만든 길이 2.4m규모의 대형 샹들리에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한쪽 옆의 장식장에는 후스전쟁 때 사망한 용사들의 해골이 전시되어있는데 활이나 창, 도끼 등으로 전투 중에 받은 상처가 해골에 그대로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성당 좌측으로 가면 손가락뼈에서 해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뼈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슈바르젠베르그 가문의 문장을 볼 수 있는데 1591년 슈바르젠베르그가 터어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상징한다.



14세기에 지어진 정통고딕 양식의 납골성당에는 두개의 채플이 있었는데 1421년 후스전쟁 당시 불에 타 무너져버렸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 얀 산티니(Jan Bla?ej Santini)에 의해 1703년부터 1710년까지 체코 바로크양식으로 다시 지어진 것이다. 납골당 밖으로 나와서 건물을 보면 1709년 M.V. Jackl에 의해 만들어진 성모마리아 상이 성당 정면 두 탑 사이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은 성당 앞에 서 있는 성 얀 네포무크의 동상으로 바츨라프, 보이띠예흐, 쁘로꼬프, 폴라리아 성인의 옆에 서 있다.


야스나 구라(Jasna Góra)

여섯 시간 가까이를 거의 쉬지도 않고 운전해서 늦지 않게 쳉스트호바(Częstochowa)에 도착했다. (지루해서 어떻게 하냐고? 지루하긴?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 하면서 지루해 본 적 있수? ㅋㅋ 뭐 일케 말한다고 돌 던지지는 마시라.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하와이에서부터 오징어를 싸가지고 왔다. 여러 번의 경험으로 볼 때 장거리 운전에는 역시 마른 오징어가 제일!)

여기서 잠깐, 체코어 읽기: 체코어중 o위에 점을 하나 찍은 ó는 우리말 'ㅜ'발음에 가깝다. 또 e에 돼지꼬리가 달린 ę는 우리말 '엥'발음, 그리고 w는 보통 'ㅂ'으로 발음되나 단어의 제일 끝에 올때는 'ㅍ'소리가 난다. 뭐 체코어는 하나도 모르면서 경험으로 터득한 것이니 틀리면 할 수 없고. ㅋㅋ

룸을 쉐어하는 형식의 3베드룸 아파트를 예약했는데 깨끗하고 쥔장도 아주 친절하다. 게다가 아직은 아무도 없다. 쥔장 말로는 밤늦게 한 팀이 오기로 했다는데 글타면 그때까진 독채 전세? 배시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일단은 미사부터 드려야 하는 터라 대충 짐만 풀어놓고 성당으로 향한다. 성당까지 약 2km, 가벼운 발걸음이다.
구글 위성지도에서 본  야스나구라 수도원

야스나구라 수도원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네 귀퉁이에 뿔이 달린 정사각형의 제단과 흡사한 모습이다. 이스라엘의 유적지 브에르 세바에 남아있는 뿔달린 제단의 처럼 생긴 이 야스나 구라 수도원은 그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요새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제대로 둘러볼 겨를도 없이 우선 성당으로 Go. Go.


성 십자가 바실리카

우선은 성 십자가 바실리카 성당으로 들어가 잠시 기도를 드리고 바로 옆에 있는 마돈나 성당으로 건너간다. ‘아. 여기 계시는 군요! 성모님!’


쇠창살 앞에서 기도드리며 바라본 검은 성모님

벌써 성당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제단 뒤에 모셔진 검은성모님 블랙마돈나를 바라보며 기도를 드리고 있다. 운이 좋아서일까? 제단 앞 쇠창살까지 갈 수 있어서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미사가 시작되기 조금 전에 제단 바로 앞 자리에 앉아있던 분들이 자리를 뜬다? @.@ 웬일? 재빨리 공주를 모시고 자리에 앉았다. 성모님이 코 앞에 계신다. 순례철에는 성화 가까이 가는 것만도 작은 기적이라 할 만큼 자세히 뵙기가 힘든 성모님이신데 이렇게 코 앞에서 뵈며 미사를 드릴 수 있다니… 성수기가 아닌 덕을 보기도 했지만 성모님께서 공주를 예쁘게 봐주신 거라고 애써 생각을 굳힌다. ‘아닌가유 성모님?’ ㅎㅎ
이쯤되면 '아전인수'가 지대로쥬?


이렇게 가까이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영광이~

대여섯분의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감동적인 미사를 드리고 성모님께 ‘낼 아침에 다시 뵈유~’ 인사를 드린 뒤 숙소로 향한다. 낼 아침에 다시 미사를 드릴 생각이다.

왜 벌써 숙소로 가냐고요? ‘배고파유!!!’

검은 성모님과 야스나구라 수도원의 자세한 이야기는 낼 다시 하기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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