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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름사랑
작성일 2011-12-24 (토) 22:45
분 류 주보 성인
ㆍ조회: 3598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5978.3
“ 한국 103위 성인과 순교자 문제 풀이(76~101) ”

          
 

    가톨릭 한국 ‘103위 성인’과 순교자 문제풀이(76~101)


 

 76. 대구교구의 제2수호자이며 충청도 홍주 태생으로, 1866년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된 
       성인은 누구인가요? 
     이윤일(요한)

77. 대구 주교관 내에 있는 성모당은 프랑스 루르드의 마사비엘 동굴을 본떠서 만든 것입니다. 
      이 성모당 건립을 성모님께 약속하고 지킨 분은 누구인가요? 
     (드망쥬 주교)

78. 다음은 누구에 대한 설명일까요? 
    (서태순(베드로)

 

<참고>한양 명문 서씨 집안으로 대구에 왔다 병인박해를 피해 문경 한실로 갔다가 붙잡혔다.
          그의 시신과 비석은 한티에 있다.

79. 병인박해 때의 일로써 당시의 옥리들이 죄인을 일일이 돌로 쳐 죽이는 일이 힘들어지자 
      이곳 개울가에 큰 구덩이  셋을 파고 교인들을 생매장 시켰습니다. 교인들은 죽음 앞에서 
      배교할까 봐 겁이나 스스로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순교했다고 합니다. 
      충남 서산 군에 있는 이 성지의 이름은?
      (해미)

 <참고>(솔뫼는 ‘신앙의 못자리’로 불리고, 이곳은 ‘신앙의 묘자리’로 불린다.
                또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인 김진후를  비롯하여 박해기간 동안 약 천여 명의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80. 조선 제4대 교구장이며, 깊은 신심과 신학을 겸비한 이분은 이 땅에서 10년 동안 사목
      활동을 하시면서 배론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를 설립하고, 서울에도 두 곳의 인쇄소를
      세우셨습니다. 누구일까요?
     (베르뇌 장 시므온, 한국명 장경일)

81. 한국에 입국하신 뒤 정의배(마르코) 집에 머물면서 한국말을 배워 고해성사를 주신 
      사제이십니다. 베르뇌 주교의 하인이었던 이선이의 고발로 체포되어 28세에 순교하신 
      이분은? 
     (백 유스토 신부)

82. 조선시대의 사형방법의 하나로 군에 의해 공개적으로 집행되며 사형수의 얼굴에
      회칠을 하고, 양팔을 등 뒤로 잡아 묶고 양쪽 귀에 화살촉을 꿰고 사형수의 웃옷을 벗긴 후 
      목을 베어, 그 목을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경고하는 의미에서 군문에 
      높이 매달아두는 것으로 김대건 신부, 앵베르 주교, 베르뇌 주교, 다블뤼 주교 등이 이 형을
      받아  순교하였습니다. 무슨 형을 말하나요? 
     (군문효수)

83. 병인 대박해가 자행되자 교황은 조선 천주교회에 교서를 보내어 교우들을 격려하고 
      또 위로하였습니다. 이때의 교황님은 누구인가요?
     (비오 9세)

84. 대원군이 러시아의 남하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외세를 빌리려 할 때 대원군과 
     베르뇌 주교간의 중재자 역할을 맡았다가 실패하고 결국 병인양요로 순교하게 된 분은? 
    (남종삼 요한)

 85. 한국순교 복자수녀회 내에 있으며 1868년 수엉 장대에서 순교한 부산일대의 순교자의 
       무덤 8개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오륜대)

86. 한티에서 30리 거리에 있으며 대구교구의 요람지로서 김보록 신부님이 대구지역 전교의 
      근거지로 삼은 곳은 어디인가요?
    (산나무골)

87. 부산 동래의 순교자로서 붓장수로 위장하여 붓대통에 교리문답을 감춰서 거제도에 복음을
     뿌린 ‘섬의 사도’는 누구인가요?
    (원봉문)

88. 병오박해와 병인박해는 어느 나라 외세에 자주 위험을 느꼈을까요?
      (병오박해 : 프랑스 함대 / 병인박해 : 러시아의 통상요구)


89. 병인박해 순교자들에 관한 조사 작업은 1876년부터 시작되어 이 신부가 입국하고부터
      더욱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습니다.누구일까요? 
    (뮈텔 신부)

90. 뮈텔 신부는 1890년 제8대 조선 교구장으로 임명된 뒤,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사성 시복을
    위해 기록을 모아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 책의 이름은? 
    (치명일기)

91. 순교자들이 시성되기 전부터 한국 교회는 9월을 복자 성월로, 9월 26일은 ‘한국 순교복자
    대축일’로 지냈습니다.
    1984년에 ‘복자 성월’의 이름이 바뀌었는데, 현재 한국교회의 전례력으로 9월은 무슨
    성월일까요? 
   (순교자 성월)

92. 그럼,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대축일’은 언제일까요?
     (9월 20일, 보편전례력에 따른 한국 성인 의무 기념일)

93. 지난 1984년은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을 맞는 해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방한하셨습니다. 그러면 1784년 한국교회 창립의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승훈의 영세)

94. 우리나라에는 103위의 성인이 계십니다. 이중 79위는 기해, 병오 박해 때의 순교자인데,
      나머지 24위는 언제 순교하셨나요? 
     (병인박해)

 <참고>(기해박해 순교자는 70위, 병오박해 순교자는 9위이다.)

95. 우리나라 103위 성인은 지난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이보다 앞서 1925년에는 79위의 순교 복자가 탄생되었는데 이 분들은 누구에 의해 
     시복되었을까요?
    (교황 비오 11세)

96. 한국 103위 순교 성인의 평균 나이는 몇 살일까요?
     (40세)

97. 한국 순교사 200여 년의 특색은 무엇일까요?
   (순교의 역사가 대단히 길었음에도 신자수가 항상 증가했고, 
    성직자 부재시에도 홀로 보존, 남녀노소,  빈부귀천, 학식에 상관없이
    많은 순교자가 신앙을 증거 하면서 수난의 역사를 극복했다는 점이다.)

98. 우리나라는 103위 성인을 모심으로써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성인이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가장 성인이 많은 나라로부터 4위까지는?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한국)

<참고> 1991년에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성당’이 ‘미리내 성지’에 세워졌다.

99. 2002년 3월 7일, 제2차 시복 시성 주교 특별위원회는 124명의 순교자 시복 대상자와 
     2명의 증거자 시복 대상자를 확정했는데, 그 대상은 몇 분일까요? 
    (순교자 124명, 증거자 2명)

100. 2005 현재. 순교자와 증거자 시복 대상자를 확정하고 시복시성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124명의 순교자 시복 안건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첫 순교자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 및 주문모 신부)

101. 2009년 현재, 시복시성 주교 특별위원회’는 순교자와 증거자 시복 대상자를 확정하고 
       시복 청원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몇 분일까요?         
      (증거자 최양업 신부와 124위 순교자)
          


 

  
*** 2008년 12월 현재, ‘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 교회 총 신자 수는 500만 4115명으로 조사됐다.
            
*** 2009년 7월 현재,
      순교자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와
      증거자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와 현양운동을 하고 있다.




 

 
  488
작성자 구름사랑
작성일 2011-12-24 (토) 22:17
분 류 주보 성인
ㆍ조회: 3578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5976.3
“ 한국 103위 성인과 순교자 문제 풀이(51~75) ”
           
 
   가톨릭 한국 103위 성인’과 순교자 문제풀이(51~75))

 

51. 조선시대의 사형방법의 하나로 군에 의해 공개적으로 집행되며 사형수의 얼굴에
     회칠을 하고, 양팔을 등뒤로 잡아 묶고 양쪽 귀에 화살촉을 꿰고 사형수의 웃옷을 벗긴 후
     목을 베어, 그 목을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경고하는 의미에서 군문에 높이
     매달아두는 것으로 김대건 신부, 앵베르 주교, 베르뇌 주교, 다블뤼 주교 등이 이 형으로
     순교하였습 니다. 이 형벌의 이름은?
     (군문효수)


52. 조선시대 형벌의 일종으로, 수형자의 옷을 벗긴 뒤 양팔을 뒤로 젖혀 엇눌리게 묶어 놓고
      높이 매달아 사방에서 채찍이나 몽둥이로 때리는 악형의 이름은? 
     (학춤)

53. 십자가에 사형수를 묶어 운반한 후 목을 베어 죽이는 형벌은?
     (참수)

54. 병오박해 때 순교한 사람 중에 하나로, 아들 임성종의 석방을 탄원하러 갔다가 
     김대건 신부님께 감화를 받고 자신마저 옥에 스스로 갇혀 박해받다 순교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임치백)

55. 강원도 강촌출신으로 머리가 둔해 교리를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던 성녀는?
    (박안나 아기)

56. 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을 보충하여 ‘증보판 기해일기’를 완성하신 분은? 
     (페레올 고 주교)

57. 페레올 주교가 1849년 11월 2일에 충청도 수리치골(현재의 공주군 봉갑리)에 세운 수녀회는?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성심회)

58. 1859년 9월 24일, 순교자 82위가 가경자로 선포되었습니다.
      이분들은 어느 박해 때의 순교자일까요? 
     (기해, 병오박해)


59.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사제로서 14년 만에 서품을 받고 귀국(1849.12)하신 
      최양업 신부님이 사목 활동을 하셨던 기간은?
     (12년)

60. 최양업 신부님이 한국인의 전통 사상과 서민의식에 맞도록 천주교의 기본교리를 
      간단명료하게 저술한 일종의 성가는? 
     (천주가사)

61. 최양업 신부님은 사목활동 중에 과로로 선종(1861.6)하셨습니다. 시신이 안장된 곳은?
     (충청도 제천의 배론)

62. 김대건 신부님께서 ‘피의 순교자’라면 최양업 신부님은 어떻게 불리나요? 
     (땀의 순교자)

63. 조선 이 王代에는 14년간 활발한 교회 활동이 가능했습니다.
      베르뇌 주교 이하 12명의 프랑스인 성직자가 활동했으며 2만 3천여 명의 평신도들이 
      있었던   당시 왕 이름은? 
      (철종)

64, 병오박해의 희생에서 벗어난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주교는 최 신부와 함께 사목활동을
      계속해오다가 1866년에 시작된 이 박해 때 순교하십니다. 이 박해는? 
     (병인 대박해)

65. 조선 말기인 1866년 시작돼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할 때까지 계속 되던 박해로, 
      여러  차례의 박해 중 가장 많은 수의 신자들이 순교한 것은 어느 박해인가요? 
      (병인박해)

  <참고>(베르뇌 주교,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브르트니에르 신부, 도리 신부,
            볼리외 신부 등   외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2만 여명의 신자들이 처형당했다)

66. 고종 3년, 병인년에서부터 시작된 병인박해를 크게 4단계로 보면?
     1) 러시아의 침략을 물리치려는 문제로 말미암아 일어난 병인년 봄의 박해

     2) 프랑스 함대의 침입 후에 일어난 병인년 가을과 겨울의 박해
     3) 독일 상인 옵페르트가 감행했던 남연군의 무덤을 도굴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일어   난 고종 5년의 박해
     4) 미국 함대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고종 8년의 박해


67. 병인박해 당시 대부분의 신자들은 절두산에서 순교했으나 고종의 혼사를 앞두고 장소를
      멀리 옮겨 다블뤼 주교를  비롯한 황석두, 장낙소 등 5명이 처형된 곳은? 
     (보령 갈매못, 병인박해 때는 대부분 절두산에서 형이 집행되었다.)

68. ‘장낙소’라고도 불리운 분으로, 당시 배론 신학당의 신학교 경리를 담당하며 
      브르트니에르 신부를 보필하셨던 배론 신학당의 전교회장은? 
     (장주기 요셉)

69. 조선교구 5대 교구장인 다블뤼 주교의 비서로, 성서 번역과 사전 편찬에 종사하다가 
      순교하신   연풍 성지의 회장이셨던 이 성인은? 
     (황석두 루가)

70. 병인박해 때의 순교자로서 공주 감영에서 문초를 받을 때 관장이 자기 살을 물어뜯지 
     않으면   배교한 것으로 알겠다고 하자 자신의 팔뚝의 살을 물어뜯음으로써 배교하지
     않았음을 증거한 용맹한 분은 누구인가요? 
    손자선(토마스)

71. 조선의 많은 동정녀 순교자들은 혼인의 풍습을 이기기 위해 “‘허가’와 혼인했다가 과부가

     되었다.“고 말하며 몰래 신앙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 ‘허가(許哥)’란 말은 어떤 뜻으로 썼을까요?
     허무(許無)

     <참고>  (조선사회는 처녀로 살아간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기로 결심한 동정녀들은 스스로 허씨의 아내가 
                  된 것이다.)

72. 초기 한국 천주교회에서 여성들의 신앙 공동체 활동은 다양하였고 조직적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시 여긴 선교활동은 무엇일까요?
     (가가호호 방문)

73. 44명의 성인과 많은 순교자를 탄생시킨 한국 최대의 순교지는? 
      (서소문)

74. 울산 장대벌에서 순교한 분들은 누구일까요?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까. 이양동 베드로)

      <참고> (이분들은 1962년 대구 감천리 교회 묘지로 이장함)

75. 울산 장대벌에서 순교한 3위는 울산 진목정에 묻혔다가 다시 대구 감천리로 이장되었습니다.
      그 후 다시 지금 세분의 시신은 어디에 옮겨졌을까요?  
      (대구 복자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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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7
작성자 구름사랑
작성일 2011-12-24 (토) 22:01
분 류 주보 성인
ㆍ조회: 3919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5975.3
“ 한국 103위 성인과 순교자 문제 풀이(26~50) ”
           
 
   가톨릭 한국 ‘103위 성인’과 순교자 문제풀이(26~-50) 
 
26. 궁녀였으며 26세 나이로 1801년 5월 23일에 서소문 밖에서 흰 젖 같은 피를 흘리며 
      순교하신 조선 최초의 동정녀 순교자는?    
     (문영인, 비비안나)

27. 교회의 새로운 지도자로서 1816년에 유진길, 조신철 등과 함께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조선 교구 설정을 이루어내며  선교사 영입 운동을 재개했던 분은?
    (정하상 바오로)

28. 주문모 신부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입국한 청국인 신부는?

     (유방제 신부, 1834년)

29. 1836년에 입국하신 프랑스인 사제로, 전력을 다해 한국말을 배우며, 상복 차림에
     방갓을 쓰고 사목활동에 혼신의 힘을 다하신 분은?
    (삐에르 필베르 모방 신부)

30. 김대건은 언제 누구에게 세례성사를 받았을까요? 
     (1836년 부활절, 모방 신부)

 

31. 김대건은 15세 때 신학생 후보가 되어 동료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중국 마카오로 
     유학(도보)을 갑니다. 이를 주선한 분은? 
    (모방 신부)

32. 이 세 명의 한국 신학생 중에서 말라리아로 일찍 세상을 떠난 이는?
    (최방제)

33. 1837년에 입국하셔서 모방 신부와 함께 가난한 삶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교세 조사와 더불어 
      고해성사에 혼신하신 사제는? 
     (쟈크 오노레 샤스땅 신부)

34. 1837년 제2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되시어 1837년 겨울 입국, 맹활약하신 사제는?  
     (로랑 죠셉 마리 앵베르 신부)

35. 앵베르 주교, 모방, 샤스땅 신부와 정하상 유진길, 조신철 등 교회의 지도자들이 순교한 
      대박해는? 
      (기해박해),

36. 이 박해 때 천주교인들을 무당이나 마술꾼 취급하여 백성들에게 가까이하지 말도록 금하는 
      내용을 발표한 글은 무엇일까요? 
     (척사윤음)

37. 기해박해(1839년) 때, 13세의 어린 소년이 스스로 천주교 신자라고 자수하여 순교했습니다.
     유진길의 아들로 103위 성인 중에서 가장 어린 이 소년의 이름은? 
    (유대철 베드로)

38. 서울 인근 밤섬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의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나 영세 입교하여 
      기해년 9월 3일에, 그리고 26일에 각각 서소문 밖에서 생을 마친 동정자매 성녀는?  
     (김효임 골롬바, 김효주 아녜스)

39. 이분은, 4C초 13세의 나이로 순교한 로마 동정 순교자(아녜스)보다 한 살 더 어린
     동정순교자입니다.
     1839년 박해 때에 ‘동정과 순교’라는 두 가지 화관을 한 몸에 받고 순교하신 이분은? 
    (이봉금 아나스타시아, 호남교회사 연구소)

40. 기해 대박해 때에 세분의 궁녀도 함께 순교했습니다 이분들의 이름은? 
     (전경협 아가다, 박희순 루치아, 김유리대 율리에타)

 

41. 한국 천주교 안에서의 첫 호교론으로 정하상(정약종의 둘째 아들)이 지은 책은? 
     (상재상서)

42. 아내와 누나와 딸이 순교하였음에도 불구하여 앵베르 주교의 명으로 순교자들의
     행적을 남기기 위해서 3년 동안  ‘기해일기’를 쓴 분은? 
     (현석문 가롤로)

43. 최초의 한국인 사제는? 
      (김대건 안드레아, 충남 당진군 솔뫼 출생)

44. 김대건 안드레아는 상해 근교 금가항 성당에서 제3대 교구장으로 취임하신 이분에게 
      성품성사를 받습니다. 누구일까요? 
    (페레올 고 주교, 1845년 서품)

45. 서품을 받은 김대건 사제는 위험을 무릅쓰고 외국인 두 사제(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한국에 모셔옵니다. 이 일행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 상륙하나요? 
     (충청도 강경 나바위)

46. 1846년에 일어난 대박해는? 
     (병오박해)

47. 김대건 신부님은 병오박해 때 순교하십니다. 몇 살이셨고, 어디에서 순교하셨나요? 
     (26세, 새남터)

48. 당시 새남터에서 순교하신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이민식 원선시오(19세)가 미리내로
      옮겼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옮겼을까요?
     (머리는 수건에 싸서 들고, 몸체는 등에 짊어지고 
               2백리 산길을 밤에만 걸어서 7일 만에 옮겨 모셨다)

49.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 중 중요한 몇 부분들은 현재 이곳에 안치되어 뒤를 이으려는 많은 
     후배들에게 격려를 해주고 계십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가톨릭 대학교)

50. 다음 중 김대건 신부님과 관련이 없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4번, 해미)

   1) 골배마실         2) 미리내        3) 익산 나바위        4) 해미


 

          다음 페이지에 계속 ----->


 


 


 
  486
작성자 구름사랑
작성일 2011-12-24 (토) 21:53
분 류 주보 성인
ㆍ조회: 3578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5974.3
“ 한국 103위 성인과 순교자 문제 풀이(1~25) ”
        
 
        가톨릭 한국 ‘103위 성인’과 순교자 문제풀이(1~25)

1. ‘순교’란, 죽음에까지 이르는 신앙의 증거를 말합니다.  이처럼 자기 목숨을 바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분들을 우리는
     어떻게 부릅니까?    
    (순교자)

2. 한국 교회의 5대 순교사건을 들라면?
   신해박해(1791),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오박해(1846),   병인박해(1866)


3. 천주교의 교리책을 깊이 탐독한 뒤 “이것은 천주의 명령이요. 
   우리는 천주의 부르심에 귀를 막고 있을 수가 없소. 
   천주교를 전파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오“  하고 말씀하셨던  
  한국 교회 창설의 탁월한 공로자인 이분은? 
   (광암 이벽 세례자 요한)

4. 우리나라 천주교의 발상지는 어디입니까?  
   (천진암 주어사)
 <참고> (이벽, 권철신, 정약전 등이 ‘주어사’에서 강학을 열고 천주교 교리연구를 시작했다)

5.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는 누구일까요?  
(김범우 토마스, 1785)

6. 조선 천주교회의 창립은 언제입니까? 
  (1784년, 이승훈 베드로의 세례와 신앙공동체 창설)

7. 전라도에 사는 윤지충과 권상연이 모친상을 치루는 과정(신주 소각)에서 발생한
    최초의 지방박해는?
   (신해교난, 1791)

8. 초기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던 이들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 중 누구였을까요? 
    (평신도)

9. 교우 중에서 임시성직자를 선출, 북경에서 보고 온 그대로 성무활동을 한 자치적 조선교회의 
   제도였습니다.  교회법상으로는 위법이었으나 신자들의 신심 활성화에 촉진제 역할을 한, 
   ‘가교계제도’라고도 불린 이 제도는?
  (가성직 제도)

10. 북경 주교 구베아에게 이 ‘가성직제도’에 대한 자문을 얻기 위해 편지를 가지고 간 사람은?
    (윤유일 바오로 )

11. 우리나라에 최초로 입국하신 사제는?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 1794년)

12. 최초의 여회장으로 주문모 신부님을 6년간 자기 집에 모시어  안전하게 포교할 수 있도록 
     보필한 분은? 
     강완숙(골롬바)

13. 박해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성소를 가꾸어 지원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려고  자발적으로  
    세운   그룹 이름은? 
    (명도회)

14.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초대회장으로 순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를 편찬한 분은? 
    (정약종)

15. 이 ‘주교요지’에 자주 등장하는 ‘삼구’, 즉 ‘세 가지 원수’란? 
     (세속, 마귀, 육신)

16. 신유박해 때 신자들을 적발하기 위해 시행된 법은? 
    (오가작통법)

17. 신유년 박해 때 전주에서 유명한 동정부부가 순교하였습니다. 그들은 누구일까요?
    (이순이 누갈다, 유중성 요한 부부 / 전주 숲정이)

18. 조선시대 최초의 총회장으로, 교우들의 교리지식을 높이기 위해 
    ‘주일 첨례의 성경해설’이란 한문책을 우리말로 옮겨 보급한 신유박해 순교자는?
   (최창현 요한)

19. 천민 출신으로 “나에게는 이 세상에 하나, 후세에 하나 이렇게 두 개의 천당이 있다.”며
     신앙을 꺾지 않고 순교하신  신유박해 순교자는? 
    (황일광 시메온)

 

20.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배론의 교우촌 토굴에 숨어서, 조선교회를 건져낼 생각으로
     국내사정과 박해사실 및 주문모 신부님과 교우들의 순교사실을 기록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황사영, 1801)

21. 신유박해 후 순교하지 못한 남인 교우들은 어떤 형벌을 받았을까요?
     (학자 교우들은 역적 모반죄로 유배형과 가산 몰수를, 처자는 관노비로 전락했으며 
      3족을 멸하는 형을 받았다. 사학죄인이라는 죄명 때문에 고향을 떠나 
     유랑걸식하며 살았다.)

22. 교우들은 박해의 손길을 피해 험준한 산맥을 타고 혹심한 곤궁과 궁핍, 굶주림을 무릅쓰고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서 교우촌을 형성해서 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유로운 신심활동과 기도생활을 하기 위해서)

23. 1801년 5월 31일,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이후 1834년 중국인 유방제 신부가 입국하기 전까지 
      33년간 성직자 없는 교회(목자 없는 교회)가 계속되었습니다. 
      이때 한국 교회 부흥 운동을 펴면서 1차적 성직자 영입 운동을 주도했던 분은?
    (신대보 베드로)

24. 우리나라 천주교 박해 이유 중의 하나로 유교의 양반 사상에 대립된 그리스도교 사상은 
     무엇일까요? 
    (평등사상)

25. 우리나라 조상들이 기꺼이 지키며 살았던 천주교 교리의 ‘칠극’은 무엇입니까? 
        1) 교만을 이기기 위한 겸손          2) 질투를 이기기 위한 애덕 
      3) 분노를 이기기 위한 인내        4) 인색함을 이기기 위한 희사
      5) 탐식을 이기기 위한 절식         6) 음란을 이기기 위한 금욕 
        7) 해태(게으름)를 이기기 위한 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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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5
작성자 구름사랑
작성일 2011-12-10 (토) 22:23
분 류 주보 성인
ㆍ조회: 3565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5928.3
“ 103.성 이윤일 요한(한국 103위 성인중에서) ”
 
 
 
성인명 이윤일 요한(李尹一 John)
축일 9월 2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회장,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816-1867년
같은이름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 요한, 이요한,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대구대교구 관덕정 순교기념관 입구의 성 이윤일 요한 동상 
 
 
   성 이윤일 요한(Joannes)은 충청도 홍주에서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친 대(代)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가 언제부터 경상도 문경군 새재 여우목으로 와서 살기 시작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박해가 일어났을 당시 그의 나이는 45세였는데, 키가 크고 긴 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므로 위엄이 있었으며, 신심이 깊고 또 솔직담백하여 주변의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다. 그의 가정은 친가와 외가 모두 선대부터 내려오는 신앙의 가문이어서 선친들 중에 전교회장과
순교자들도 있었다.
이 요한도 이러한 가풍을 이어받아 온갖 방법과 노력으로 자기 본분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1866년 11월 18일(음력 10월 12일), 문경 관아에서는 여우목에 신자들이 많이 산다는 것을 알고 포졸들을 보냈다. 이 요한은 포졸들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올 때가 온 것이며 이미 각오한 바 있어 도망하지 않고 태연히 그들을 맞아 들였다.

 
포졸들이 “이 마을을 대표하는 집 주인이 누구며 천주교를 믿는 자가 누구냐?”고 묻자,
그는 선뜻 나서며 “바로 나요” 하며 점잖게 말하였다. 그들은 마을을 수색하여 이 요한의 가족 8명과 마을의 신자 30명을 체포하여 험준한 산길을 걸어 문경으로 끌고 갔다.

   그들은 문경에서 사흘을 지낸 후 상주로 압송되었다. 여기서 세 달을 지냈는데 그가 기거하던 곳은 집이 아니었고, 마구간도 돼지우리도 아닌 겨울에 무나 배추를 저장하기 위해 파 둔 구덩이가 요한의 침실이었다.

 
그의 목에는 죄수가 쓰는 칼이 두 개나 채워졌고, 발에는 차꼬를 끼워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굽히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기도와 묵상을 하였으며 신자들을
격려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 후 상주 목사는 마지막 문초를 마치고 70여 명의 신자를 세 편으로 갈랐다.

첫째 편은 집으로 돌려보낼 자들이고, 둘째 편은 처형될 사람들 그리고 셋째 편은 이 요한과 같은 사교의 두목이었다. 상주 목사는 1867년 1월 4일 대원군의 윤허와 함께 군중에게 교훈이 되게 사형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 집행을 위해 대구로 압송하였다.
 
이 요한은 사형선고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출발하기 전에 자녀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제 순교하러 떠난다. 너희들은 집에 돌아가 성실하게 천주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하여라. 그리고 꼭 나를 따라 오너라” 하고 말하였다.

   1867년 1월 21일(음력 1866년 12월 16일) 이 요한은 포졸들이 주는 마지막 음식을 다 받아먹고 남문 밖 관덕정으로 끌려 나갔다. 천주학장이를 참수한다는 소식이 널리 퍼져 형장은 인파로 들끓었다.

집행관이 나와서 선고문을 낭독하자 요한은 품속에서 돈주머니를 꺼내어 희광이에게 주며 “나를 위해 수고하는 자네에게 줄 터이니 받아서 요긴하게 쓰게나. 그 대신 부디 한 칼에 내 목을 베어 주게나.” 하고 말하였다. 요한은 경건하게 십자성호를 긋고 조용히 꿇어앉았다. 돈을 준 효력이 있었는지 요한의 목은 한 칼에 떨어졌다.

   순교 후 그의 유해는 이 토마스와 그의 아들 이의서 마티아에 의해 대구 날뫼(비산동)에 매장되었다가, 1901년 경부선 철도가 착공되면서 당시 용인의 먹뱅이에 살고 있던 그의 동생 이시영에 의해 1912년 이동면 묵리 산으로 이장하였다.

 
1976년 6월 24일 다시 미리내 무명 순교자 묘역으로 이장되었다가 성인의 유해임을 밝혀져 1987년 1월 21일 대구 성모당에 안치되었고, 그날 대구대교구의 제2 주보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러다가 1991년 1월 20일 관덕정 순교기념관 성당 제대에 모시고 봉안식을 가졌다.
 
그는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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