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ha! 천주교 하와이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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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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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름사랑
작성일 2013-10-07 (월) 23:22
분 류 교사 마당
ㆍ조회: 843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8342.20
“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23):미사예물 ”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23) 미사례물

             (미사젼, stipendium Missae, stips Missae)

                  미사에 대한 대가 아닌 ‘자유로운 봉헌’
                 특별한 지향 갖고 미사 봉헌하며 바치는 예물
                 전례 거행의 대가 지불·계약으로 오해 말아야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이다.
본당신부가 사무실을 지나가는 데 어느 자매가 사무장에게 큰소리로
‘돈을 돌려주지 못해!’하면서 난리를 치고 있더란다.
가만히 내용을 들어보니 대학입시를 앞두고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며 거액의 미사예물을 봉헌했는데, 그만 대학에 떨어졌기에 효험 없는
미사에 봉헌한 미사예물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당신부는 쓴웃음을 머금고 사무장에서 눈짓으로 돌려주라고 했다는
황당한 이야기이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앞서는 기복신앙의 전형적인 예이다.
기복신앙에 대해서는 추후에 기회가 있을 때 다루고 지금은 미사예물이
어떤 기원을 지녔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미사예물’은 예전에는 ‘미사례물’이라고 썼으며 ‘미사젼’이라고도 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미사례물에 대한 설명은 「회장직분」 미사성졔편에 나온다.
 

위의 문헌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사예물은 두 종류가 있다.
생미사와 연미사이며 생미사는 살아있는 사람, 그리고 연미사는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예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구분에 있어서 연미사를 봉헌하더라도
그 미사를 드리는 가족들 역시 은총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생미사를 봉헌한다하더라도 죽은 이들에게 전혀 은총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미사예물을 봉헌하면서 지향하는 바를 사제에게 모두 일일이 적거나 아뢸
필요 없으며 생미사와 연미사의 획일적 구분은 좋지 않다.
구체적인 지향은 미사를 드리면서 마음에 품으면 된다.

또한 「회장직분」에는 고해성사 중에 미사지향을 부탁하거나 예물을 드리는 것을
금지한다고 나와 있다.
당시에는 미사예물이 공식적으로 나와 있는데
 
미사례물은 보통 사제의 하루 생활비를 관습적으로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위의 문헌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생미사와 연미사의 획일적 구분에 대해 그리고 미사지향을 너무 상세히 적어
발표하는 것에 대해서 한국 천주교회는 전통적으로 올바른 지침을 내렸다는 것이다.

 
「회장직분」에서 확인했듯이 현재의 미사예물은 교우들이 특별한 지향을 가지고
미사를 봉헌해 주기를 청하면서 미사 주례자나 공동 집전자에게 주는 봉헌금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초기교회에서의 예물은 성찬례 준비예물이었으며
남은 것은 성직자와 가난한 이웃의 생활비로 이용됐다.
 
즉 미사예물은 결코 미사에 대한 대가가 아니고 자유로운 봉헌이었다.
미사예물에 지향을 곁들인 것은 4세기 이후의 일이며 이 관습은 11세기에
널리 성행했다.
 
트리엔트공의회는 미사예물에서 어떠한 이익 추구도 배제하도록 노력했으나
자세한 지시는 하지 않았다.
우르바노 8세 교황이 비로소 1625년 각 미사에 한 대의 미사예물만 받을 수 있다고
결정했고 후대에는 본당 사제가 주일과 축일에 의무적으로 지내는
교중 미사(applicatio pro populo)에는 미사예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금지했다.

새 교회법에 따르면 예물이라는 용어는 ‘대가’(stipen dium)에서
‘봉헌금’(stips)으로 바뀌었다(교회법 945조 참조).
 
대가(stipendium)라는 말은 상업적 용어로서 정의에 따라 부과할 의무가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에 반해 봉헌금(stips)은 가난한 이들이나 하느님을 위해 무상으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정의에 따라 계약된 만큼의 의무를 이행한다는 뜻을 갖고 있지 않다.

최근 몇몇 신학자들은 새 교회법과 교황 바오로 6세의 자의 교서
「Firma in Traditione」(1974.06.13)에 근거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사예물은 교회의 직무를 위해 교우들이 자유로이 봉헌하는 것이지
전례 거행에 대한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를 현재화하는 미사의 ‘효과’는 미사예물의 많고 적음이나
있고 없음이 아니라 참례자들이 지니는 내적 헌신과 그리스도와 결속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미사예물은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예물이지 어떤 조건문이나 계약서가 아니다.
미사예물을 통해서 교우들은 미사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례하며 사제생활과 교회의
실질적 활동을 지원한다.
 
미사예물로써 자신의 미사를 샀다고 하는 의식은 버려야 한다.
사제는 미사지향에 대한 언급은 명확히 해야 하며 감사기도에서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감사기도의 중심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역사에 대한 기억과 감사,
성령청원, 중재이기 때문이다.


윤종식·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가톨릭신문(2012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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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름사랑
작성일 2013-09-29 (일) 22:48
분 류 교사 마당
ㆍ조회: 682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8274.20
“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22):삼우제와 사십구재 ”
 
         
                                                                                                                        2013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22)

                 삼우제(三虞祭)와 사십구재(四十九齋)

 
                       교회 정신에 따라 영혼의 구원 비는 민족예식
                       삼우미사, 유교 삼우제 토착화해 수용한 연미사
                      사십구재, 불교 ‘윤회관’ 바탕으로 한 제례양식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전통제사를 존중하여 효(孝)와 가족 공동체의 유대 차원에서
명절이나 기일에 가풍에 따라 전통제사를 드릴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제사나 명절 차례에 ‘연도’라는 우리민족 가락의 위령시편을 봉헌한다.
연도 이외에도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유교의 삼우제(三虞祭)를 토착화해 수용했다.

한국 천주교회 「상장예식」에는 삼우제(三虞祭)를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예식으로
받아들여 토착화한 전례로 실천하도록 하는 예식이 제시돼 있다.

「상장예식」 제5장 128항은 제목을 우제(虞祭)라 하여 삼우제(三虞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시신을 묘소에 두고 돌아온 다음 영혼을 달래어
안정시키려고, 초우, 재우, 삼우를 지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상을 떠난 이보다도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이런 심정은 마찬가지여서 사별의 슬픔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세상을 떠난 이를 생각하여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사별의 아픔을 달래고 희망을 북돋우는 때이다.”

성균관의 한 유학자는 “삼우제는 유교에서 시작하였으나 현재는 유교에서보다
한국 천주교회의 전례에서 토착화된 예식으로서 더 잘 드러나게 실천되고 있으며
그 토착화의 열매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우리 조상들은 삼우날 유가족들이 묘소를 참배하고 예를 드리는 제사를 드렸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이 삼우날 미사를 드리고 묘소에 가서 상장예식서의
삼우예식을 바친다.
 
초우와 재우의 예식은 신앙고백과 분향이 있는 ‘말씀전례’ 형태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나 삼우예식에는 신경이 없다.
본당에서 ‘삼우미사’라고 해서 연미사를 봉헌하는 유가족이 있다.
그러나 삼우미사는 어떤 특별한 미사의 형태가 아니라 그날 미사에 죽은 자들을
위한 연미사 지향을 올린 것이다.

「상장예식」은 우제(虞祭)와 관련해 삼우제인 초우, 재우, 삼우에 연미사를
봉헌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삼우미사란 명칭은 이처럼 자연스럽게 생겨난 전례용어이다.
그러나 삼우미사는 그날 미사에 죽은 이를 위한 지향으로 미사예물을 봉헌하고
유가족이 이 미사에 참례하는 형태일 뿐 연미사의 다른 형태가 아니다
(참조: 미사 총 지침 380~381항).
 
유럽의 가톨릭교회에서도 죽은 지 3일, 5일, 7일에 미사를 드리는 관습이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있고 특히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신 3일을 기념하는
3일 미사가 성행했다.

삼우(三虞)미사는 사목적 목적이 강하다.
초우, 재우, 삼우 기간에 유가족 중 냉담교우들은 교회의 부활신앙으로 돌아온다.
또 고해성사로 영혼을 정화하고 가족 공동체의 유대를 다지게 된다.

삼우제(三虞祭)는 천주교회에서 민족 전통 장례풍습 정신인 효(孝)의 표양으로
받아들여져 그리스도가 십자가 죽음 후 3일간 무덤에 묻히심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유교의 삼우제와 삼우미사가 토착화된 전례로 수용된 것과 달리
불교의 사십구재(四十九齋)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가끔 사십구재 미사를 봉헌해야 한다며 49대의 연미사 예물을 사무실에 접수하는
신자들이 있다.
이는 잘못된 관습이다.
 
사십구재(四十九齋)는 윤회하기 위한 판결을 기다리는 죽은 영혼이 7명의
각 재판관에게 7분야의 재판을 차례로 받는 형벌로, ‘심판의 기간’을 의미한다. 마지막 49일째 되는 날이 최종 심판관인 염라대왕의 심판이 있는 날이며, 그 심판으로 윤회되는 날 정성을 다하여 판결을 가볍게 한다는 불교의 윤회관을 바탕으로 하는 제례양식이다.

사십구재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불교의 제례문화가 해석 없이 천주교 연미사에
그대로 수용된 문화의 역전이(易轉移) 현상이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연미사는 언제까지 드려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탈상(脫喪)과 관련하여 한국 천주교회는 어떠한 규정도 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각 가정에서 성경과 교회의 정신을 반영하여 스스로 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삼우미사를 통해 예수님이 묻히신 3일간 연미사를 봉헌하며 연도할 수 있다.
49일이 아니라 주님의 부활 이후 성령 강림을 상징하는 50일 혹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7일간 창조하고 휴식하신 7일간을 탈상기간으로 정해도 좋다.
 
필자의 가정은 일곱 번의 안식년 다음 해인 50년의 ‘50’이라는 숫자에 ‘완전한 회복’의
의미와 ‘희년(禧年)’의 의미를 담아 50일 미사를 봉헌했다
(참조: 레위 25,18-19 탈출 21,2-6).
그 밖에 100일이나 1년을 드리는 경우도 있다.

현대인의 생활 안에서 이러한 탈상의 기간마저 교회가 하나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탈상기간 외에 연미사를 봉헌하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모든 연미사의 정신은 죽은 한 개인의 구원뿐 아니라 통공을 통해 모든 연옥영혼들이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구한다는 것이다.
 
연미사 기간을 궁금해하기보다는 성경과 교회의 전례정신을 반영해 선택하는
자유로움이 천주교회 상장예식에 뿌리 내리길 바란다.

윤종식·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가톨릭 신문(2012년 0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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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름사랑
작성일 2013-09-24 (화) 20:57
분 류 교사 마당
ㆍ조회: 549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8223.20
“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21):조당과 혼인 장애 ”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21)

                  조당과 혼인 장애(Impedimentum matrimoniale)

                         신자로서의 의무·권리 찾는 것 급선무
                         혼인 관련 교회법 어긴데 따른 성사생활 장애
                         하루속히 본당사제와 상담해 해결책 찾아야
 
본당에서 가끔 신자들이 이혼한 교우에게 ‘자매님은 이혼을 해서 조당에 걸렸으니,
영성체도 못하고 고해성사도 못합니다!’라고 가르치는 경우를 만난다.
‘어쩜 이렇게 잘못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제대로 가르쳐준다.
 
요즈음처럼 사회이혼이 급증하고 있는 시기에 ‘조당(阻 )’이라는 말은 굉장히 부정적으로 사용이 되고 있고 아주 큰 죄를 지은 죄인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래서 이 용어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와 언제 사용해야하는지, 또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 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조당’은 직역하면 ‘막아서 가림’이라는 뜻으로 「한불자전」(韓佛字典, 1880)에 따르면 방해, 지장, 장애 등의 뜻으로 ‘阻 ’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일부 국어사전에선 ‘阻 ’으로도 사용하고 있는 옛말이다.
혼배성사를 성립시키지 못하는 자연법적·교회법적 조건, 일반적으로 ‘혼배조당’을
지칭한다.

조당은 쉽게 말하면 교회의 법을 지키지 않아 성사생활에 지장을 받게 되었다는 뜻이다. 조당에 걸린 자는 미사에 참례할 수 있지만 영성체를 할 수 없다.
 
이는 벌로 이해하기보다는 조당을 통해 그 신자의 인권과 신앙생활을 보호하고자 하는
안전장치로 알아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가톨릭 신자는 원칙적으로 가톨릭 신자하고만 혼인하도록 교회법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비신자와의 결혼은 사제에게 관면을 받고 그 가정에서 태어날
자녀를 세례 받게 하고 가톨릭 신자로 교육하며 신자인 배우자의 종교생활을 인정하는
서약을 하여야 혼인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배우자와 사회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식장에서 일반적인 사회혼인을 하였다면 당신은 미사 때 영성체를 할 수 없으며
고해성사를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혼인식을 하고 국가법대로 혼인신고를 했지만 교회에서 요구하는
혼인면담과 혼인교리, 혼인식을 하지 않았기에 교회법상 제대로 혼인을 하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천주교회의 오래된 문헌인 「회장직분」에는 100년 이전의 가톨릭 신자들의
생활이 나타나는 데 조당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조당’을 다른 말로 하면 ‘장애(Impedimentum)’ 더 자세히 하면
‘혼인 장애(Impedimentum matrimoniale)’라 하며 이는 혼인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법률로 정당하게 혼인 할 수 없게 하는 조건이나 환경을 말한다.
1983년 교회법에 규정한 혼인 장애를 그 성격상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1. 절대적 장애 - 세례자이건 비세례자이건 모든 사람과의 혼인에 해당되는
                      장애(성교불능장애, 혈족장애)

2. 상대적 장애 - 일정한 사람과의 혼인에만 해당되는 장애
                      (성품장애, 수도 종신서원장애, 연령장애)

3. 영구적 장애 - 원인이 남아 있는 한 계속되는 장애(성교불능장애, 혈족장애)

4. 일시적 장애 - 장애 원인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멸될 수 있는 장애(연령장애)

이러한 혼인 장애는 교황만이 설정하고 권위 있게 해석할 권한이 있다.
그리고 혼인 장애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정당한 권한을 가진
교회기관(주교좌나 사도좌)에 의해서 관면을 받을 수 있다.
관면이란 정당하고 이치에 맞는 이유가 있을 때 법적인 의무를
면제시켜주는 것을 말한다.

본당에서 가장 많은 조당의 경우는 형식적으로 교회에서 혼인을 하지 않았거나,
전에 했던 혼인을 교회법원에 무효소송을 하여 해소하지 않고 재혼을 하여
살아가는 경우이다.

어머니인 교회는 조당에 걸린 교우가 보다 합당한 자격을 갖추고
주님께서 현존하시는 성사들에 정정당당히 참여하여 은총과 축복을 받게 하려고
노력하며 배려한다.
조당에 걸린 교우들은 성사생활을 할 수 있지만 온전하게 참석하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특히 영성체와 고해성사가 그렇다.
위급한 상황에서 병자성사는 받을 수 있다.

본인이 조당이라는 것을 알면 재빨리 본당 주임사제와 상담을 하여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조당에 걸렸다고 자녀들의 교회생활이나 자신의 신앙생활에 어떤 위축감보다는
우리가 미리 이러한 조당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자신의 의무와 권리를 찾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윤종식·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가톨릭 신문 (2012년 2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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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름사랑
작성일 2013-09-12 (목) 23:10
분 류 교사 마당
ㆍ조회: 649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8120.20
“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20):성무일도와 시간 전례 ”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20)

                   Officium divinum(성무일도)와 Liturgia Horarum(시간전례)

                        ‘함께’ 기도할 때 교회 참모습 드러난다
                         하루를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감사기도
                        신앙 기반 형성하는 기도 시간마다 바치며 성화

 몇몇 주임신부님들이 교우들과 함께 성무일도를 바치는 본당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작년에 우리 본당에서도 사순시기와 대림시기에 화, 목요일 아침마다
교우들과 성무일도를 바쳤다.
 
비록 많은 수의 교우들은 아니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교우들의 마음과
목소리가 일치됨을 느낄 수 있었고 기도 후에 이어지는 미사에 참례하는 태도가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교우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신부님! 성무일도는 무엇이고, 시간전례는 무엇이죠?
어느 신부님은 성무일도를 바친다고 하고, 다른 신부님은 시간전례를
행한다고 하고…. 어느 것이 맞지요?”

‘전례에 관심을 지닌 많은 교우들이 이런 의문을 지니고 있겠구나!’ 라는
깨우침을 주는 질문이었다.
같은 것인데 역사적 과정과 강조하는 내용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용어들임을
잘 밝혀줄 필요가 있기에 설명을 하기 위해 라틴어로 제목을 적어보았다.

오피치움 디비눔(Officium divinum)을 성무일도(聖務日禱)라고 번역을 했는데,
실제로는 ‘신성한 직무’라는 의미이기에 聖務라는 말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이 직무가 뜻하는 ‘하루의 성화’라는 의미의 日禱를 지혜롭게 추가한 것이다.
 
오피치움 디비눔(Officium divinum)이 언제부터 교회에서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이 용어는 성 베네딕토의 ‘수도회 규칙(Regula Monasteriorum)’에서 수도회
공동체의 성가로 기도하는 ‘오푸스 데이(Opus Dei)’ 의 영향을 기반으로 선택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여하튼 법적인 직무를 의미하고 시간마다 기도를 통해서 성화한다는 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아서 리투르지아 호라룸(Liturgia Horarum)이라는 용어를
1959년부터 여러 출판물에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받아들여
「전례헌장」에서도 사용했다.
 
여기서 리투르지아(Liturgia)라는 말이 들어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 수행’(전례헌장 7항)인 전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공적 예배 중 하나가 바로 함께 드리는 공동체의 기도임을 확인하고 있다.
 
호라룸(Horarum)은 이 전례가 “낮과 밤의 모든 흐름이 하느님 찬미를 통하여
성화되도록 이루어져”(전례헌장 84항) 있기 때문에 필요한 용어이다.
현재 교회는 오피치움 디비눔(Officium divinum)과
리투르지아 호라룸(Liturgia Horarum)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아무래도 신앙생활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은 기도다.
만약에 기도하지 않는 신앙인이라고 하면 앙코 없는 풀빵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알맹이 없는 껍데기 교우라 하겠다.
호남교회사연구소의 김진소 신부는 「민족사와 교회사」라는 책에 실은
‘한국 천주교회의 소공동체 전통’에서 이렇게 전해준다.
 
“초기 한국천주교회는 전통적으로 기도를 神工(神功)이라고 했다.
신공은 신앙심의 단련, 영적인 단련, 노력 등을 뜻한다.
 
옛날에는 성서와 교리 공부, 신심 서적의 독서, 의무적으로 바치는 기도와
청원 기도 등 모든 신앙 행위를 신공이라고 하였다.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를 한글로 번역하여 사용하였는데,
서두에 ‘언제나 기도하라’(루카 18,1)는 말로 시작되는 이 기도서를 영혼 생명의
양식으로 사용하였다. [...]
 
온 가족이 모여 아침·저녁 기도, 묵주 기도, 교회가 매월 특별한 신심에 지향을
정한 대로 聖月의 기도문을 바쳤다.
또 새벽·낮·저녁에는 三鐘을 바쳤다.
삼종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기도를 바쳤다.”

기도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은 초기 한국천주교 교우들은
“일상생활에서 주님의 기도(天主經)와 성모송(聖母頌·聖母經)을 수없이
바치는 동안 예수·마리아 신앙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고, 입술에
‘예수 마리아’가 옮아 언제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예수 마리아’를 불렀다.
 예수·마리아를 부르는 자체가 기도였다”고 한다.

기도를 생활화하는 신앙공동체는 기본이 충실하기에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이러한 신앙공동체의 중심역할은 아무래도 사제들과 수도자들이다.
 
그래서 교회는 이렇게 당부한다.
“거룩한 사목 교역에 헌신하는 사제들은 ‘끊임없이 기도하여라’(1테살 5,17 참조) 한
바오로의 권고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더욱 생생하게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더욱 큰 열성으로 시간경의 찬미를 바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제들이 수고하는 일에는 오로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5)고 하신 주님께서만 성과와 발전을 가져다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전례헌장 86항)

그렇다고 사제들만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이라면 모두가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함께할 때 더 큰 효과가 발생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인 교회(ecclesia)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사제와 함께 기도하는 신자들이 놀라운 저 찬미의 노래를 올바로 바칠 때에,
이는 참으로 자기 신랑에게 이야기하는 신부의 목소리이며, 또한 당신 몸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기도이다.”(전례헌장 84항)

교우들과 함께 사제가 성무일도를 바치는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들이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

윤종식·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가톨릭 신문 (2012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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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름사랑
작성일 2013-09-02 (월) 20:25
분 류 교사 마당
ㆍ조회: 621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8033.20
“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19):천주교와 가톨릭 교회 ”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19)

                     천주교(天主敎)와 가톨릭(catholic) 교회

                             만물의 주님·보편적 진리이신 하느님 흠숭
                             천주교, 중국에서의 ‘천주’ 개념 토착화한 명칭
                             가톨릭, 정통한 신앙 의미 전하는 로마교회 지칭
 

성당에서 세례받기를 원해서 찾아온 예비신자들에게 가장 혼돈스러운 것은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라고 한다.
특히 개신교에서 개종한 분들은 ‘하나님’에서 ‘하느님’으로, ‘성도’에서 ‘신자, 교우’로,
‘목사’에서 ‘신부, 사제’로 바꾸어 사용하는데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용어들과 함께 ‘천주교’와 ‘개신교’, 그리고 ‘기독교’라는 말처럼 애매모호한
용어들을 정리해주는 것이 예비신자 교리 초기에 필요하다.

그렇다면 천주교는 언제, 어느 문헌에서부터 나타났을까?

예수회원인 마태오 리치가 중국에 갔을 때 그는 중국인의 사상을 연구하고
가톨릭교회를 ‘천주교회’라고 불렀다.
중국에서는 많은 사상가와 종교가 있었지만 온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하는 조물주의
개념으로 天主 즉, 천하의 주인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었고 결국 마태오 리치는
「천주실의(天主實意)」를 지었다.

천주실의(天主實意)란 제목은 ‘하느님에 대한 참된 토론’이라는 뜻이며,
8편 174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들이 총 500여 종에 이르는 서양 학술서적을 다투어
한문으로 번역 출판하는 분위기 속에서 1593~96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며,
1603년에 중국 북경에서 처음 간행된 이후 선교사들에 의해 거듭 출판되었다.
바로 이 책에서 천주교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나타낸다.
즉 천주교는 ‘천주의 종교’라는 뜻이다.

「천주실의」는 가톨릭 철학과 스콜라 사상의 입장에 선 서사(西士)와,
전통 유학과 불교·도교의 사상을 갖춘 중사(中士)가 토론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었다.
동양사회에 대한 천주교 전파가 목적이었으므로 유교적 교양을 바탕으로
천주교 교리를 설득하는 방식이다.
필요한 경우 불교와 도교 이념도 동원하였으며 중국의 고사(故事)와 성어(成語)를
적절히 이용하였다.

1편은 신의 존재와 그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2편은 불교·도교에 대한 논박과 상제(上帝) 개념 등 천주교 수용의 기반이 되는
유교의 성격에 대한 설명을,
3편은 천국(天國)의 필요성과 식물·동물·인간의 특성을,
4편은 인간 영혼의 신령함과 범신론적 일신론(汎神論的 一神論)에 대한 비판을,
5편은 윤회설 등 불교에 대한 비판과 그리스도교의 재계(齋戒)의 성격을,
6편은 죽은 후의 상벌(賞罰)과 지옥·천국·연옥에 대한 설명을,
7편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으로 귀결되는 인간의 본성을,
8편은 천주교 신앙생활과 상통하는 중국 고대의 생활과 천주교에 귀의하여야 할
당위성을 논하였다.

마태오 리치는 중국이 갖고 있는 천주라는 하느님의 개념을 토착화하여
천주교라는 명칭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은 어떤 뜻이고 언제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보편적’, ‘일반적’, ‘공번된’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katholikos에서 유래했다.
안티오키아의 주교였던 이냐시오 성인(98-117년 사이에 순교)의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서간문’에서 처음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가톨릭교회가 있듯이 주교가 나타나는 곳에
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라고 쓰고 있다.

그리고 이 용어가 널리 퍼져서 사용되었음을 니케아 신경의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는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공번된, 보편된’은 성 빈첸시오가 말했듯이 “모든 사람이 모든 시대에
모든 장소에서 믿어 온 것”을 의미한다.
 
교회가 보편적이기 위해서는 교회가 가르치는 신앙이 당연히 타당해야 했으므로
이단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신앙의 정통성을 의미하는 말로서 정통한 신앙을
전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뜻하며 사도로부터 전래되었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교회가 로마교회(서방)와 정교회(동방)로 갈라지면서 양쪽교회에서 모두
 ‘가톨릭’이란 표현을 사용하다보니 구별이 쉽지 않다.
그래서 혼란을 피하고자 서방교회를 ‘로마교회’ 또는 ‘로마 가톨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후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로마 가톨릭에 항의하여 새롭게 교회를
시작한 개신교들을 ‘항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부르면서 가톨릭이란 말은 자연스럽게 로마교회에 붙는 고유명칭처럼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천주교가 전래된 이후에 서학(西學), 천주학(天主學), 천주교(天主敎),
가톨릭교 등으로 혼용되어 오다가 주교회의에서 ‘천주교 또는 가톨릭교’를 선택
공인하여 「가톨릭 지도서」(Directorium, 1932년)에 규정함으로써
공식명칭이 되었다.

그런데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Catholic이 ‘카톨릭’으로 표기해야 하지만
한국천주교회에서는 이미 훨씬 오래전부터 ‘가톨릭’으로 써왔고
「천주교 용어집」(2000년 발간)에서도 개신교를 설명하면서 가톨릭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천주교’나 ‘가톨릭’이나 모두 모든 만물의 주님이시며 보편적인 진리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표현하기에 천주교우들은 창조된 모든 만물들인
자연과 인류를 사랑할 때 참된 가톨릭 신앙인이라 하겠다.

윤종식·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가톨릭 신문(2012년 1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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