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ha! 천주교 하와이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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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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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델라
작성일 2010-11-10 (수) 21:25
분 류 사도직 단체
ㆍ조회: 1103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4404.14
“ 11월17일 제49장 하느님의 나라 ”

49장 하느님의 나라

策絜臣僚  책혈신료   신하들을 거느리신

禹湯堯舜  우탕요순   우탕요순 임금님들

箴規紳儒  잠규신유   선비들을 바로잡는

  仲閔孔孟  중민공맹   중유 민손 공자 맹자

  斟酌奢淳  짐작사순   방종 순박 헤아리고

  雙甄標準  쌍견표준   사람 도리 분별하여

  炎火怖燒  염화포소   영겁의 불 두려우니

  撫膺敏墾  무응민간   정성 다해 간구하라

 

右節言, 之道其敎人, 致君澤民, 正心誠義, 人當斟酌於眞爲之途, 甄別其信徒之準, 以循當然之則, 而豈怖永火之無救, 始盡心以昭事上帝哉. , 勉也. , 領也. 浮華曰, , 樸實曰, . , 別也. , 心胸之間.

우절언, 야소지도기교인, 치군택민, 정심성의, 인당짐작어진위지도, 견별기신도지준, 이순다연지즉, 이기포영화지무구, 시진심이소사성제재. , 면야. , 령야. 부화왈, , 박실왈, , , 별야. , 심흉지간

 

 윗절은 그리스도의 교와 그 교인은 임금을 섬기고 백성을 다스림에 바른 마음(正心)과 성의(誠意)를 다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마땅히 그 어느 道가 참되고 거짓된가를 헤아리고 생각할 것이며, 또 신도들이 지켜야 할 표준이 엄격히 구별되어 있으니, 신도로서 마땅히 이를 지킨다면 어찌 영겁의 불 속에서 구령되지 아니할 것을 두려워하리오. 그러므로 온 정성을 다하여 상제를 섬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1) 중유(仲由) : ()는 자로(子路). 공자의 제자들 중 최연장자로서 친구와 같은 관계였고, 성실하고 강직하면서도 제자들 중에 가장 온화하고 인간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자신의 결점을 지적해주면 매우 기뻐할 정도로 덕행을 닦는데 힘썼다고 한다.

 

2) 민손(閔損) : 자는 자건(子騫). 공자보다 15세 아래로, 덕행에 있어 안연과 나란히 뛰어났으며, 지극한 효성으로 중국 24효자의 하나로 손꼽히는 제자이다.

 

3)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 : 이름은 구(), ()는 중니(仲尼).

부친은 몰락한 귀족 집안 출신의 숙양흘(叔梁紇)이고 모친은 안()이며,()나라의 창평향(昌平鄕) 추읍(陬邑, 현재의 山東省曲阜)에서 양공(襄公) 22년에 출생하였다. 최고의 德을 仁이라 했고 '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 했다. (仁을 수양하기 위해서 자기를 이기고 禮를 다하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실천하는 가르침을 펼쳤다.) 애공 16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유교의 시조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4) 맹자(孟子, 기원전 372-219) : ()나라(지금의 山東省 추평현)에서 태어났다. 맹자는 어려서부터 공자를 숭배하여 자사(子思, 공자의 손자)의 문인에게서 수업을 받았으며, 공자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켰다. 맹자는 요순(堯舜)임금으로 부터 우(), (), (), (), 주공(周公). 공자를 거쳐서 본인에게 이르기까지 道의 정통성을 내세움으로서 유교의 체계를 확립시킨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 성경읽기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에페 1, 20-23)

 

* 묵상

 

 이벽 성조는 결론으로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 나라의 구원을 얻기 위해 '올바른 마음(正心) '마음을 다해(誠意)'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며 준비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구령, 즉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섬겨야 한다.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이므로, 모든 사람은  이를 기준으로 살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영혼의 구원이라는 목표에 대한 의식은 희박하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나 그다지 절실하지도 못하고 그 실천도 미약한 수준에 그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우리는 자신과 이웃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열정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자기 영혼의 구원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으며, 영혼의 구원을 체험하고 있는지 묵상을 나누어 보자.

 

* 영적독서 

 

 德만을 위하여 德을 행하는 것, 이 일과 이 뜻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이것은 성인이 아니면 해낼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성인들도 德을 베풀 때, 그 큰 뜻은 모두 하느님을 위하고 德의 아름다움을 위하는 데 있다고 하더라도, 한편으로 죽은 뒤의 보답을 바랐을 것이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이 어찌 죽은 뒤의 보답을 바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로움을 바랄 것이 없다면 어떻게 게으름을 채찍질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德을 행하는 수고로움을 받아야 하고, 세속과 함께 하는 즐거움에서 떠나야 하는데, 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다면, 어떻게 악을 버리고 자신의 사욕을 누를 수 있겠는가?

 주인이 있고 보답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도 오히려 빈틈없이 덕을 닦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데 주인을 인정하지 않고 보답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찌 빈틈없이 덕을 닦을 수 있겠는가? 결국 덕행을 꺼리는 것은 오직 세상에서의 보답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德을 행하여서 세상에서의 보답을 바란다면,德의 본 바탕은 마침내 비어버릴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사실은 德이 아니라, 다만 이익일 뿐이다.

 천당은 바로 모든 사람이 살아갈 마을이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이며, 천사와 성현들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사람이 그곳으로 올라가면, 하느님의 본모습을 뵐 수가 있고,善에 흔들림이 없어지게 되고, 해로움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바라는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이곳에서 모두 얻을수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들어 내었을 때, 착한 일을 행하는 이들에게 천당을 바라고, 그것을 얻기를 바라고, 그곳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도록 하였는데그것이 바로 큰 德이다. 그런데 도리어 그것을 이익이라고 하니, 이는 참으로 마귀들이 사람들을 악으로 빠뜨리고,善을 게을리 하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말이라고 하겠다. (칠극, 게으름을 채찍질하다 7, 418-419 

(광암 이벽의 성교요지에 따른 영성의 김동원 , 2008, 초판2, p204-207)

 

 
이름아이콘 아델라
2010-11-18 21:59
오늘은 저희들이 모임을 시작한지 꼭 1년이 된 날이며 마지막 모임입니다.
1년동안 저희 직암회를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리며
또한 직암회와 함께 해 주신 모든 분 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모든 분들께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리며
저희가 함께 나눈 마지막 장인 하느님 나라를 올려봅니다.
*  (내년에는 다른 주제(성경)로 모임을 할 예정입니다. 시작은 내년 2월 중순 예정)
 
「달레 천주교회사」에 황일광이라는 백정 출신의 천민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처음 신자들 모임에 갔을 때 양반들이 그의 소매를 끌며 들어오라고 환영했습니다.
당시 천민은 양반과 감히 한자리에 앉을 수 없었던 시대였으므로
그는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분에 관계없이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천주님을 믿으면 죽어서 천당에 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내게는 천당이 두 개 있습니다.
지금 여기가 천국이고 죽어서 갈 곳도 천국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천국, 즉 하느님나라가 두 개 있습니다.
삶의 끝에서 가야 하는 하느님 나라와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에게 ‘이미’ 주어 졌으나
완성해 나아가야 하는 ‘아직’인 하느님 나라입니다.
이 두 개의 하느님 나라는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야 하는 하느님 나라는
백정출신 황일광이 체험했던 것처럼
우리의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나눔과 친교를 이루고, 하느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며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사는 공동체를 이루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대림 시기를 맞이 하게 됩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깨어 준비하는 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름아이콘 남애경
2010-11-29 04:59
<영성의 길> 대단원을 훌륭히 마치셨음을 축하드립니다. 한국 천주교회 창립자이신 광암 이벽성조의 영성을 통하여 예수님을 새로이 만나셨을 직암회에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위대한 신앙 선조께 존경을 드리며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델라자매님의 노고에도 경의를 표합니다.
   
 
  56
작성자 아델라
작성일 2010-11-04 (목) 17:22
분 류 사도직 단체
ㆍ조회: 1058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4379.14
“ 11월10일 제48장 하느님 ”

48장 하느님  

矧窺浩蕩  신규호탕   주님 모습 광대하고

喧奕無邊  훤혁무변   크신 음성 끝없어라

緝熙淵穆  집희연목   감춘 모습 우러르면

翹睇鈞顔  교제균안   덕화의 빛 심원하네.

匍匐跣  포복선기   허리 굽혀 꿇어앉고

慙懟胥刪  참대서산   미움 원망 버리고서

傴僂踧踖   구루축적   삼가하고 공경하면

冥頑徐悛  명완서전   어둔 마음 깨치리라.

 

右節, 上主之德廣大無名, 上主之功光明可見, 人當沈思邈慮, 若或見之, 則跪拜禱祝, 化其不善之心, 而敬謹恭順感受聖靈, 自改其前日之冥頑矣. 浩蕩, 廣大貌. 暄奕, 宣著盛大之貌. 緝熙, 光明也. 淵穆, 深遠之意. , 怨也. , 除也. 傴僂, 鞠躬也. 踧踖,恭敬也. 冥頑, 不靈者也. , 改也.

 

우절, 상주지덕광대무명, 상주지공광명가견, 인당심사막려, 약혹견지, 즉궤배도축, 화기불선지심, 이경근공순감수성령, 자개기전일지명완의. 호탕, 광대모. 훤혁, 선저성대지모. 집희, 광명야. 연목, 심원지의. , 원야. , 제야. 구루, 국궁야. 축적, 공경야. 명완, 불령자야. , 개야

 

 윗절은 상주의 덕이 광대하기가 이를 데 없고 상주의 공이 광명함을 볼 것이니, 사람은 마땅히 깊고 아득하게 생각하며 혹 상주의 덕과 공을 깨달으면 무릎 꿇고 기도하고 축복하며, 그 착하지 못한 마음을 고치고 삼가 정성되이 공경하며 성령의 감응을 받아 그 전일의 명완함을 스스로 뉘우치고 고쳐야 함을 말한 것이다. 호탕(浩蕩)은 광대한 모양, 훤혁(喧奕)은 널리 드러남이 성대한 모양이다. 집희(緝熙)는 광명한 것이고 연목(淵穆)은 뜻이 심원함이다. ()는 원한이며, ()은 제거하다의 뜻이다. 구루(傴僂)는 몸소 공경하고 삼가는 것이며, 축적(踧踖)은 공경하고 삼가는 모양, 명완(冥頑)은 신령스럽지 못한 것이고, ()은 허물을 뉘우치고 고치는 것이다

 

* 성경읽기 

 

 "그래서  나도 주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전해 듣고,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 때문에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에페 1, 15-19) 

 

* 묵상

 

 이벽 성조는 성령의 감응을 받아 하느님의 덕은 광대하기가 이를 데 없고 공이 광명함을 마땅히 깊이 생각하고 깨달음으로서 정성을 다해 공경하고 자신의 착하지 못한 마음을 스스로 뉘우치고 고쳐가도록 권고하고 있다. 신앙에 의한 깊은 직관으로 생생하게 체험한 하느님에 대해서 매우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의인의 영혼은 피조물을 매개로 삼지 않고, 자신을 뚜렷하고 분명하게 직접 나타내는 하느님의 본질을 통해 서로 대면하여 직관함으로써 하느님의 본질을 알게 된다." (베네딕토 12세 교황)

 무엇이나 받아들여지는 것은 받아들이는 존재의 능력이나 양상에 따라 받아들여진다는 공리에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체험하기 위해서 마음과 지성과 자세가 고양되고 그 능력이 확장될 필요가 있다.

 나는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서 체험하고 있는지, 광암 이벽 성조와 같이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하고 설명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나는 '하느님다운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하여 어떻게 신앙생활의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묵상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 영적독서

 

 두려워 할 벌도 없고, 바랄 상도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마귀는 힘이 세고 포악한 우리들의 원수다. 그리고 그것들은 오직 사람들의 덕을 없애고, 사람들을 죄악 속으로 빠뜨릴 것만을 꾀한다. 그런데 그것들이 꾀하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善德을 행하더라도 죽은 뒤에 보답이 없고, 죄악을 저지르더라도 죽은 뒤에 벌이 없다고 믿게 하려는 것이다.

 성 예로니모는 "우리들은 모두 다 조그마한 일에는 힘을 기울이고 조심하면서, 큰일은 게을리 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오직 참된 생명과 참된 복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경에는 세상 사람들이 "사람과 짐승이 끝에 가서는 똑같아, 이들 둘의 사정은 다를 것이 없다. 곧 모든 사물이 숨을 거두는 것은 똑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사람도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으니, 둘 다 흙을 빚어 만들어 내었고, 끝내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누가 구별하겠는가? 아담의 자손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들의 혼은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전도 3,19-21)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 말을 잘못 믿어 모든 죄를 거리끼지 않았고, 모든 善을 게을리 하였다. 그리고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즉시 벌을 받지 않는 것을 보고는 "천지에는 주인이 없다. 그러니 악한 일을 하더라도 害를 받을 것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너그럽게 보아주어 바로 벌을 내리지 않는 것은, 당신의 도량이 넓고 매우 자애로워 빨리 벌을 내리지 않고서 우리들이 뉘우치고 고치기를 기다리는 것일 뿐이지, 전혀 알지 못하여서 벌을 내리지 않는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德은 큰 수고를 겪지 않고서는 닦을 수 없고, 사람의 욕망은 큰 고통을 받지 않고서는 이겨낼 수 없다. 그러니 보답을 받고 싶다면, 힘을 더하고 보태어서 고통과 수고를 이겨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자신을 닦고 다스려서 德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리고 보답을 바라게 하는 것 이외에 모든 사람들에게 善에 힘쓰게 하고, 게으름을 경계시킬 수 있는 어떤 방법이 또 있겠는가?

(칠극, 게으름으로 채찍질하다 6, 416-417)

(광암 이벽의 성교요지에 따른 영성의 김동원 , 2008, 초판2, p200-203)

 

 
이름아이콘 아델라
2010-11-12 18:48
“의인의 영혼은 피조물을 매개로 삼지 않고,
자신을 뚜렷하고 분명하게 직접 나타내는 하느님의 본질을 통해
서로 대면하여 직관함으로써 하느님의 본질을 알게 된다.”(베네딕토12세 교황)

하느님을 알고 체험하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응답하는 신앙 안에서
자신의 마음과 지성과 자세를 확장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받아들이는 능력이나 양상에 따라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인 신앙은
하느님의 안목으로 우리의 삶을 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인간 구원의 시작’이 되며
그리스도인의 첫째 의무인 믿음 안에서
그분께 대한 희망을 두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은 성삼위의 친교를 다하고
사람들과 친교를 가지라는 부르심을 받아들여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자신의 전부를 하느님께 바치는 완전한 응답입니다.

우리는 이 향주삼덕의 생활을 함으로써 하느님을 깊이 알게 되며
‘나의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며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 해의 막바지인 위령성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위해 내 삶의 마무리를 기억하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내 신앙의 방향을 그분께로 돌렸으면 합니다.
   
 
  55
작성자 아델라
작성일 2010-10-28 (목) 22:56
분 류 사도직 단체
ㆍ조회: 970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4348.14
“ 11월 3일 제47장 죽음 ”

47장 죽음

黽勉肅  민면숙옹   정성 다해 공경하라

慌逢殤殂  황봉상조   죽음 앞에 다다르면

軀殼匪牢  구각비뢰   육신은 허약하니

眚慝酸楚  생특산초   죄 숨기면 괴롭다네.

涕淚悚惶  체루송황   눈물 흘려 근심하며

伴侶  빈설반려   자주자주 친구 함께

旦肄旬諏  단이순추   매일매일 공부하며

警惕臭腐  경적취부   육신 부패 경계하라

右節言, 人當勤求於道, 致敬盡禮, 畏死亡之日近, 而知肉體之牢, 罪惡之未免, 邀結同志, 恐懼祈求, 蓋深惕臭腐之期, 靈魂之失於救耳. 黽勉, 勤求也. 肅誠敬. , 和順. 夭死曰, . 壽死曰, . 軀殼, 肉身也. ,小罪. , 隱惡. 悚惶, 恐懼之貌.

우절언, 인당근구어도, 치경진례, 외사망지일근, 이지육체지뢰, 죄악지미면, 요결동지, 공구기구, 개심척취부지기, 영혼지실어구이. 민면, 근구야. 숙성경. , 화순. 요사왈, . 수사왈, . 구각, 육신야. ,소죄. , 은악, 송황, 공구지모

 

 윗절은 사람이 마땅히 道를 부지런히 구하여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禮를 다하여 정성되이 공경하며 죽을 날이 가까워 옴을 두렵게 생각하고 육신의 굴레 속에서 죄악을 면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아 동지들과 요결하며 두렵고 송구한 마음으로 기구하여라. 이는 대개 육신이 썩는 날 영혼의 구원을 잃을까 깊이 염려함인 것이다. 민면(黽勉)은 부지런히 구함, ()은 정성스럽게 공경함, ()은 부드럽게 순종함이다. 일찍 죽는 것을 상()이라 하고, 오래 살다 죽는 것을 조()라고 한다. 구각(軀殼)은 육신이며, ()은 모르고 지은 작은 죄이다. ()은 악을 숨긴다는 뜻이다. 송황(悚惶)은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 성경읽기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을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루카 13, 23-25)

 

* 묵상 

 

 이벽 성조는 인간의 육신은 시간이 지나면 늙어서 죽음에 다다른다는 것을 생각하여,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道를 닦으며 구원을 위해 힘쓸 것을 간곡히 권고한다. 특히 죄는 구원을 가로막는 것이므로 마땅히 경계해야 하며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할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성령을 받고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 살아가지만 또한 죄를 짓고 하느님을 거스른다면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위해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늘 순종하였습니다. 내가 함께 있을 때만이 아니라 지금처럼 떨어져 있을 때에는 더욱더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필리 2,12)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어떻게 도와주고 있는지에 대하여 묵상하고 이야기 나누어 보자.

 

* 영적독서

 

 실천해야 할 道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바른 道는 반드시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그것은 저절로 하느님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살아 있는 사람이 서둘러야 할 것 가운데 바른 道를 찾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너희는 아내를 맞이하려고 하면 현명한 여인을 찾을 것이고, 밭을 사려고 하면 기름진 땅을 찾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물건이나 모든 일에 대해서는 뛰어나고 좋은 것을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계획을 세우고, 노력을 수고로이 여기지 않고,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서 그것을 손에 넣으려고 한다. 그런데 다만 道를 찾는 일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道에 대해서는) 선과 악을 따지지도 않고, 바르고 바르지 않은 것을 가리지도 않고, 곧 그것을 잡는다. 그런데 물건이 참되고 참되지 않은 것은 자세히 헤아려서 참된 것을 찾으면서, 어찌하여 道가 바르고 바르지 않은 것은 자세히 헤아려서 바른 것을 찾지 않는가?

 참되지 않은 물건을 사면 약간의 돈만 잃을 뿐이다. 그러나 참되지 않은 道를 따르면 하느님을 잃고, 참된 德을 잃고, 하늘의 보답을 잃고, 공적을 쌓지 못한다. 그리하여 끝내 하느님의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한 재앙을 받게 될 것이니, 더 크게 잃을 것이 있겠는가?

(칠극, 게으름으로 채찍질하다 5, 415-416

(광암 이벽의 성교요지에 따른 영성의 김동원 , 2008, 초판2, p197-199)

 

 
이름아이콘 아델라
2010-11-04 17:25
우리는 ‘종말’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죽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삶으로 가는 문임을 압니다.
이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우리들이 노력해야 할 삶이 무엇인지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벽 성조께서는 ‘인간의 육신은 시간이 지나면
늙어서 죽음에 다다른다는 것을 생각하여,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도(道)를 닦으며
구원을 위해 힘쓸 것”을 권고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가로막는 죄를 경계하고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다른 이들을 도와줌으로써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실천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친분 관계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실천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종말 심판관이신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최후의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
즉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마태25,35-40참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주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그분 앞에 섰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하실 것입니다.

“참되지 않은 물건을 사면 약간의 돈만 잃을 뿐이다.
그러나 참되지 않은 도(道)를 따르면
하느님을 잃고, 참된 덕을 잃고, 하늘의 보답을 잃고, 공적을 쌓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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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델라
작성일 2010-10-28 (목) 22:53
분 류 사도직 단체
ㆍ조회: 906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4347.14
“ 제46장 벌레 ”

46  벌레

蠶織蛛組  잠직주조   누에 고치 짓고 거미 줄 치며

蚓唱蟬吟  인창선음   지렁이 울고 매미 노래하네

徜徉邃閣  상양수각   벌레들은 깊은 곳에 노닐고

紬繹閒庭  주역한정   한가한 구석에서 베 짜도다

抛臠獵蟻  포련엽의   고기가루 던지니 개미 사냥하고

飯鬨蠅  단반홍승   파리들은 밥덩이에 들끓네

麽瞬肦  요마순분   하루살이 한순간 사라지나

岡付凄辛  강부처신   영혼의 처참함은 모르도다

右節, 麽小蟲暫有生命, 所以絶無思慮, 不知有艱辛之事. 人則生命甚重, 失救甚苦, 其當如何信心, 而始得免凄楚也. 織也組, 亦織也. , 肉屑也. 肉屑有如獵然. , 鬧也. , 渺小也. , 思也. 凄凄楚辛, 艱辛.

우절, 요마소충잠유생명, 소이절무사려, 부지유간신지사. 인즉생명심중, 실구심고, 기당여하신심, 이시득면처초야. 직야조, 역직야. , 육설야. , 찬육설유여렵연. , 뇨야. , 묘소야. , 사야. 처처초신, 간신.

 

 윗절은 작은 벌레들은 생명이 순식간에 지나지 않으므로 사려가 없고 또 쓰라린 일을 알지 못하나 사람의 생명은 심히 귀중하여 만약 구원을 잃는다면 그 괴로움이 어떠하리오? 그러므로 깊이 믿어야만 비로소 처초함을 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도 또한 짜다의 뜻. ()은 고기 부스러기이다. 개미가 고기 부스러기를 떠매는 것이 마치 사냥하는 것과 같다. ()은 뇨()니 부산하고 시끄러운 것이며, ()는 아주 작은 것을 말한다. ()는 생각함이며, ()는 처초함, ()은 쓰리고 어렵다는 뜻이다

 

* 성경읽기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로마 8, 18-25)

 

* 묵상 

 

  벌레들은 한 순간에 덧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인간은 영혼이 존재하므로 생명의 존귀함과 구원의 중요성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다른 여러 가지 생물들과 비교해서 그 존재함이 빛나는 것은 바로 영혼의 존귀함 때문이다. 영혼이 없다면 수많은 생물들과 같이 별로 존귀할 것도 없다고 하겠다. 따라서 인간이 최대한의 관심을 갖고 힘써야 할 일은 바로 자신과 이웃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그저 마음의 평화를 위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분명한 목표는 영혼의 존재를 깨닫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해 힘쓰는 것이다. 어떻게 영혼의 존재를 깨닫고 자신과 이웃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는 사도직을 실천할 것인가.

 

* 영적독서 

 

 오늘날의 사람들은 세상일에는 매우 부지런하면서도 善德에는 매우 게으르다. 그 까닭은 세가지가 있는데, 마음속에 공경하고 따를 주인이 없는 것이 하나이고, 실천해야 할 道가 없는 것이 하나이고, 두려워해야 할 벌과 바랄 수 있는 상()이 없는 것이 하나이다.

 주인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천지에는 근본이 되는 주인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서 그를 공경하고 섬긴다면 善으로 향하게 되고 善에 기대게 된다그러므로 크고 작은 善을 행하는 뿌리는 모두 천지 가운데 주인이 있음을 믿고 알아서, 공손한 마음으로 삼가 그를 받드는데 있다. 따라서 모든 성현들이 남긴 도덕을 행하는데 가르침을 살펴보면, 모두 만물의 참된 주인을 섬기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善을 행하려고 하면서 이 참된 주인을 버린다면 善에 뿌리가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참된 주인을 버렸다면) 선한듯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아니며, 선하다고 하더라도 보잘 것 없고 작아서 하늘에서 보답을 받을 것이 없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주인이 없는 것은 마치 하늘에 북극성이 없고 배에 키가 없는 것과 같아, 나가고 물러남에 법도가 없고, 행동이 어지러우며, 기준으로 삼을 것이 없다. 그러니 참된 주인을 알지 못하는 것은 바로 모든 惡의 근본이다.        (칠극, 게으름을 채찍질하다 4, 414-415)

 (광암 이벽의 성교요지에 따른 영성의 김동원 , 2008, 초판2, p194-196)

 
이름아이콘 아델라
2010-10-30 14:56
오늘은 45장과 46장을 함께 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장인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
우리 자신과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각자의 사도직에 대해 나누어 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구원’ 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구원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구원은 내 삶의 완성, 곧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나를 불러주신 목적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이 세상 삶과 동떨어진 삶이 아니라
저 세상과 연결된 이 세상 삶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삶이 시작되었으며
부분적으로 영원한 삶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영원한 삶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희망은 하느님의 사랑,
예수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된 사람들이고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목적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습니다.
이 구원은 나와 이웃에게 열려있어야 하며
지상에서 이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비록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우리 자신들이지만
하느님 나라를 향하는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에 따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대로 자신을 내어드렸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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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델라
작성일 2010-10-20 (수) 22:37
분 류 사도직 단체
ㆍ조회: 1077      
http://hi.djcatholic.or.kr/cafe/?hawaii.4307.14
“ 제45장 물고기 ”

45 물고기 

鱗介蕃滋  인개번자   물고기 조개 번식하니

譜題麤確  보제추확   그 종류도 복잡하네

龜鱉黿鼉  귀별원타   거북 남생이 자라 악어

鯤鰲鯨  곤오경악   곤어 큰자라 고래 악어

淬蝗掬蝦  쉬황국하   새우가 메뚜기 움키고

泅雀撈蛤  수작로합   참새는 조개 잡아먹네

卵濕累   란습루자    물고기는 알을 까고

俄頃跳躍    아경도약    퍼덕이나 영혼 없네   

     

右節, 鱗介之族雖多, 然中無靈魂, 其跳躍不過少頃耳. 可見人生甚爲貴重, 奈何竟等於鱗介, 而不思救其靈哉. 蕃滋, 言衆多也. 淬泅, 沒水之貌. , 落水則化. 蝦又雀, 入大淬爲蛤, 見禮月令. 俄頃, 少頃也.

우절, 인개지족수다, 연중무영혼, 기도약불과소경이. 가견인생심위귀중, 내하경등어인개, 이불사구기영재. 번자, 언중다야. 쉬수, 몰수지모. , 락수즉화. 하우작, 입대쉬위합, 견예월령. 아경, 소경야.

 윗절은 물고기와 조개류는 비록 많으나 영혼이 없어 그 살아 뛰는 기간이 잠시에 지나지 않으므로 인생이 매우 귀중함을 알수 있는데 어찌하여 사람들이 물고기류와 같이 그 영혼을 구하려고 생각지 아니하였는가를 기록한다. 번자(蕃滋)는 무리가 많다는 뜻이며, 쉬수(淬泅)는 물에 빠지는 모양, 메뚜기가 물에 빠져 새우가 되고 참새가 큰물에 들어가 조개로 화한다는 것은 <예기> 월령편을 보라. 아경(俄頃)은 잠깐 사이이다

 

* 성경읽기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즐거워 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베드 1, 5-9)

 

* 묵상 

 

 이벽 성조는 바다의 수없이 다양한 물고기와 동물을 보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영혼의 존재를 생각하고 영혼을 구하도록 이끌고 있다. 삼혼설에 의하면, 초혼은 식물의 혼으로서 성장하기는 하나 감각이 없고, 각혼은 동물의 혼으로서 감각은 있으나 지각이 없으며, 영혼은 인간의 혼으로서 지각이 있어 생각하고 판단하고 기억하며 추리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영혼은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정신체를 의미할 뿐 아니라,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 불사불멸의 존재이다.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영혼을 주시고,영혼의 존재와 구원을 설명하는 말씀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영혼이 없다면 지상 생활로 인생을 영원히 마감하게 된다. 그러나 영혼이 존재하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위해 힘쓰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의 손이 그것을 이루셨음을, 그분의 손에 모든 생물의 목숨과 모든 육체의 숨결이 달려 있음을." (욥기 12,10)

 우리는 어떻게 영혼의 존재를 의식하고 생활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묵상하고 그 체험을 나누어 보도록 하자.

 

* 영적독서

 

 사람이 일을 하고 있을 때에는 사악한 생각은 들어올 곳이 없다. 그래서 마귀는 그에게서 물러간다. 그러니 한가하게 있으면, 곧 그에게 나아가서 그를 부추기고 유혹한다. 그리하여 그의 마음의 생명을 해치고, 그의 공덕을 비우게 하며, 그가 하늘에서 받을 보답을 없애 버린다. ...

 게으른 이는 한가한 것을 좋아하지만, 또한 한가로운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한가한 것을 즐거운 것으로도 여기지만, 동시에 한가로운 것을 근심거리로도 여긴다. 그런데 한가로움을 즐거운 것으로 여기고 동시에 근심스러운 것으로 여기다가, 마침내 모든 욕망 속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성경에 "게으름뱅이의 욕심은 그를 죽이니 그의 손이 일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잠언 21,25)는 말씀이 있다. 따라서 눈으로는 쓸데없는 일을 보려고 하고, 입으로는 먹고 마시는 것을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고, 혀로는 많은 말을 하기를 좋아하고, 귀로는 남을 헐뜯는 말을 많이 들으려 하고, 몸으로는 음란한 욕망을 즐기고 싶어 한다. ...

 사람들이 일을 선택할 때에는 반드시 다음의 세가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하나는 善이다. 착한 일은 매우 많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을 이겨내고, 바른 道를 닦고, 하느님을 섬겨서 죽은 뒤의 영원한 세월의 일을 준비함에 힘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다른 하나는 이로움이 있는 것이다. 만약 쓸데없는 일에 힘을 써서 한가로움을 없애려고 한다면, 참으로 웃을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오늘의 근심을 없애고, 오늘의 즐거움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이로운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오직 일이 이미 끝이 난 뒤에, 반드시 마음의 덕에 이로움을 주어서 나의 참된 배움을 늘려 주어야만 그제서야 한가함에 맞서는 이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그 하나는 (바깥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마음의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덕이 있는 선비들은 마음을 기울여 그것을 꾀한다. 그들은 바깥일을 할 때에는 마음을 빌려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마음을 맡기지는 않는다. 그리고 가령 바깥일에 힘쓴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속마음을 해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하느님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도덕에 마음을 기울이는 참된 생각을 품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바깥일을 하지 않더라도 착한 생각이 그칠 때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일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조용하다고 하지, 한가롭다고 하지 않는다.   

(칠극, 게으름을 채찍질하다 3, 401-405) 

(광암 이벽의 성교요지에 따른 영성의 김동원 , 2008, 초판2, p19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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